국정 마비 시계제로…與 "탄핵보다 조기 퇴진" 野 "2차 내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12·3 심야 비상계엄 선포 나흘만에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시계제로의 정치 혼란상이 빚어지고 있다. 국정 마비가 현실화한 가운데 8일 여당 지도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주장했고, 야당은 이런 여권의 시도를 ‘2차 내란 행위'로 규정하며 맞부딪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회동한 뒤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국민의힘 투표 불참으로 정족수 미달 폐기됨에 따라, 향후 당정이 키를 쥐고 국정을 수습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탄핵보다 조기퇴진이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는 게 한 대표측 논리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탄핵의 경우는 가결 후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상당한 기간 불확실성이 진행된다”며 “(그동안) 극심한 진영(간)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관련해 한 대표는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 판단”이라며 “지금 진행되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기관 수사가 엄정하고 성역 없이,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에 대한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한 총리와 한 대표는 향후 주 1회 이상 정례 회동하기로 협의했다. 한 총리는 “여당과 함께 지혜를 모아 모든 국가기능을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운영하겠다”며 “국정 정상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그 부수법안의 통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우원식 국회의장님의 리더십 하에 여야 협의를 통한 국회운영이 뿌리내리길 희망한다”며 “정부가 먼저 몸을 낮추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요청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이 같은 움직임을 ‘2차 내란 행위’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 탄핵과 즉각적인 체포·구속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거국 내각을 포함해 여당이 제시하는 그 어떤 타협책도 수용 불가능하다는 게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이다. 이재명 대표는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여당 대표와 총리가 해괴망측한 공식 발표로 다시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며 “오는 12월 14일 우리 민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윤석열을 탄핵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윤석열은 배후 조종으로 숨어 있으면서 내란공모 세력을 내세워 내란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얼굴을 바꾼 2차 내란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대국민 담화 발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대국민 담화 발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한 대표가 “당 중심의 수습”을 거론하는 것과 관련해 “우리 국민은 윤석열을 대통령을 뽑았지, 여당을 대통령으로 뽑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일반 국민 시각에서 보면 (한 대표) 니가 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 대표가) 공산당 인민위원장쯤 되나”라는 비판도 했다. 윤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사의를 재가했다는 소식에 민주당은 “한동훈 대표가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윤 대통령이 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한민수 대변인)고 비판했다. 야당이 이미 처리한 내년도 ‘삭감 예산안’에 대해선 이 대표가 “오는 10일까지는 처리하는 게 바람직할 거 같다”며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추가 삭감 조치가 필요할 거 같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계엄 사태 과정에서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총리가 수습 과정에 적극 나서는 데에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이날 한 총리를 향해 “위법, 합법을 떠나 제정신인가 의심이 된다”며 “왜 그러셨나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욕심이 앞서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 내란사태 특별대책위원장인 김민석 최고위원도 “한 총리가 계엄 전 국무회의에서 계엄령발동에 찬성했다면 수사대상”이라며 “헌법상 행정부 통할권, 공무원임명권, 법령심의권, 외교권, 군 통수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건 위헌”이라고 공세했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날 한 총리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위임 없이 여당 대표가 국정을 주도하는 것은 옳지 않고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그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여당이 공동행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며 “공동 담화 발표 등을 통해 위헌적 행위가 마치 정당한 일인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국민주권과 헌법을 무시하는 매우 오만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공동 담화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공동 담화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여야는 이날 모두 ‘윤 대통령이 퇴진하고 수사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계엄 관련 수사 방식과 주체를 두고는 대립했다. 국민의힘에서는 검찰 특수본 주도의 수사에 힘을 싣는 기류가 강하다. 반면 민주당은 “경찰청 국수본이 수사하고 특검으로 가야한다”며 일반·상설특검 동시 가동을 추진했다. 친여 성향 검사들의 수사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오는 10일 본회의에서 상설특검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12일에도 본회의를 열어 ‘내란 특검’으로 불리는 일반 특검법을 김건희 특검법과 함께 상정한다. 민주당은 한 대표에 대한 특검법 추진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특검 뿐 아니라 추가 고발이랄지, 현 시점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혼란상과 관련해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현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 속도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훨씬 빨라 당장 다음주 대통령 지지율이 발표되면 여당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정부와 여당이 당장 탄핵 또는 하야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보수 진영은 ‘탄핵 트라우마’에 이어 ‘국민 계엄 트라우마’를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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