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익명을 요구한 방첩사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메시지를 보내 “해당 문건이 과거 연습·훈련 때 방첩사의 전시전환절차 관련 통상적 업무의 일환으로 작성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추미애 민주당 의원 등 야권은 전날(8일) 제보 내용을 토대로 방첩사 비서실에서 지난 11월 작성한 이 문건이 계엄 모의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계엄선포 ▶계엄사령관·계엄사령부 ▶합동수사기구 ▶기타 고려사항(계엄·통합 방위 동시 발령 시) ▶참고 1~7 등으로 구성된 문건에는 헌법 및 계엄법 따라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경우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법적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추 의원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국회 권한을 제한하려는 대통령의 계엄 시도를 이미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참고 대목에선 ‘엄중 처단’이라는 단어가 담긴 1979년 10월 26일·1980년 5월 17일 계엄포고령이 담겼는데, 일각에선 지난 3일 포고문에서 등장한 처단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해당 방첩사 관계자는 문건이 작성된 경위를 잘 안다면서 이를 반박했다. 그는 “황유성 전임 사령관이 재직하던 2023년 2월 자유의 방패(FS) 연합연습에서 논의됐던 핵심 내용을 2023년 7월 말 을지자유의방패(UFS) 연습 때 계엄업무실무편람과 해설서 등을 참조해 요약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엄이 선포되면 합동수사본부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으로서 헌법, 계엄법 등을 파악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며 “편람 등을 요약해 작성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문건이 현 시점에 문제가 된 데 대해서는 “비상계엄 선포 후 다들 난리가 난 상황에서 향후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질 수 있어 요약 자료를 출력해 참고했다”며 “이 과정에서 외부로 새어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인형 사령관이 지난 11월 해당 문건을 작성하면서 치밀하게 계엄을 준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전임 사령관 때 작성된 해당 자료를 여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추 의원실은 “방첩사에 이런 계엄 관련 문건을 작성할 권한 자체 없다는 게 핵심”이라며 “공개 문서는 여러 개 중 하나일 뿐”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방첩사 요원이 계엄군으로 투입됐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계엄업무실무편람에 따르면 방첩사 요원은 합동수사본부 이후 수사요원으로 역할을 할 뿐 계엄군 임무 자체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지기도 전 중앙선관위의 서버를 방첩사 요원이 장악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만 앞서 여 방첩사령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회·선관위에 약 170명의 방첩사 인원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170명을 모두 수사 요원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냐는 지적이다.
이번 계엄 포고령 1호의 작성 주체가 방첩사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방첩사 내 PC 시스템을 들어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첩사 관계자는 “PC 시스템이 폐쇄망인 데다 외부 출력도 물리적으로 불가하다”며 “계엄을 모의한 측이 별도로 외부에서 작성했을 수는 있지만, 방첩사 내부에서 작성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여 사령관 “미리 알고 준비했다면 시작도 하기 전 노출됐을 것”
여 사령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방첩사가 계엄령을 사전기획하고 준비했다는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기무사 해체 트라우마로 방첩사 부대원 모두 계엄령에 매우 민감하다”며 “사령관이 미리 알고 준비했다면 시작도 하기 전 노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대 출동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며 “(요원들이) 국회나 선관위 근처까지 가다가 복귀했다는 건 방첩사가 계엄령을 사전 알지 못한 점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또 “방첩사는 계엄령 선포 후 그 사실을 알았고 대북작전도 방첩사가 기획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다”고 여 사령관은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