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대증원 뒤집기' 총력…"그동안 뭘했나" 내분 조짐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류에 의료계는 ‘의대 증원 뒤집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공의 단체는 지난 2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첫 공식 집회를 열였고, 의대 교수 단체도 곳곳에서 시위했다. 이런 와중 의료계 내분이 감지된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를 향해 “지금까지 뭘 했나”고 비판했다.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젊은 의사 의료계엄 규탄 집회'에서 사직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이 계엄 규탄 및 의료개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젊은 의사 의료계엄 규탄 집회'에서 사직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이 계엄 규탄 및 의료개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단 비대위원장은 8일 소셜미디어(SNS)에서 강희경 교수를 향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공의를 언급하며 처단하겠다고 합니다. 강희경 당신은 교수로서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력에 맞서 본 적은 있습니까. 그래서 당신이 거리로 나갔습니까. 하겠다던 사직은 했습니까”라고 말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강희경 교수가 지난 10월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했던 토론회도 문제 삼았다. 그는 “대통령실 사회수석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전공의에게 부모 운운하며 패륜을 일삼은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의대 교수들은 이런 자를 대표로 앉혀놓고 부끄럽지도 않냐”면서 의대 교수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박 비대위원장의 비판은 강 교수가 지난 7일 의사 단체 대화방에서 한 발언에 대한 반박이다. 차기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강 교수는 “박단 위원장과의 관계가 어떻냐”는 한 의대 교수의 질문에 “박단이 무슨 활동을 했는지? 정책을 제안했나? 전공의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했나?”고 답했다. 이어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주시면 답변하겠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8일 같은 대화방에서 박 비대위원장을 암시하는 듯한 말도 남겼다. 그는 “혹시 계엄이 선포된 밤에 의협 비대위가 연락이 두절되고, 의협 비대위의 ‘의사들이 거리에 나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선언한 배경에 ‘전공의 대표’의 의견과 요청이 있었다던데 그분이 이분인가? 의아했던 기억은 있다”고 덧붙였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를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열린 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를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열린 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의협 비대위는 9일 입장문을 내고 박 비대위원장을 옹호했다. 의협 비대위는 “박단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이란 이유로 강 교수의 비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건 전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의협 비대위를 겨냥한 강 교수의 비판에도 “특정 후보가 비대위를 먼저 비난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갈등 배경엔 지난 2월 의대 증원 발표에 대한 의대 교수와 전공의 간의 대처가 갈렸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 교수는 병원에 남았다. 전공의들은 “교수들이 병원을 나왔으면 의대 증원은 이미 백지화”라고 말한다. 반면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 입장은 이해하나 환자를 떠날 수는 없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 시국을 동력 삼아 의료계는 ‘의대 증원 백지화’로 뭉치고 있지만, “지금까지 뭐 했나”는 박 비대위원장의 물음처럼 되돌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바심도 읽힌다. 2025학년도 입시 일정이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의대 수시 합격자를 발표했다.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 이월하는 방안도 이미 모집 당시 공고에 반영돼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료계는 이날도 ‘2025년도 의대 모집 중지’를 요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9일 성명을 내고 “40개 의대 총장들은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중지와 정원 감축을 실행하라”고 촉구했다. 전의비는 “탄핵 시국임에도 윤석열의 어이없는 의대 증원 폭탄에 따른 의대 입시가 지금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 의학교육과 대학병원은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비상계엄 해제 직후 보건복지부는 “의료개혁은 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육부도 “이미 결정된 대입 전형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탄핵 정국에 의료개혁이 차질을 빚는 건 불가피하지만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여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