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일대에서 700억원 상당의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임대인 일가가 1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자금 관리 등 대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벌여 피해를 키웠다”며 이들을 질책했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판사는 9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모(60)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1억 360만원을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아내 김모(54)씨와 감정평가사인 아들(30)에도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형법상 사기죄의 법정형은 징역 10년 이하지만, 여러 죄가 있는 경우 재판부가 경합 범죄까지 가중 적용해 최고 징역 15년을 선고할 수 있다. 주범인 정씨에게 법정최고형이 선고된 것이다.
정씨 일가족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일가족과 17개 임대법인 명의를 이용해 수원시 일대 주택 약 800가구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뒤 임차인 51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760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피해 규모가 늘면서 두 차례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 10월 28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정씨와 아내 김씨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아들에겐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정씨 일가는 재판 과정에서 일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경기 침체 등 외부적 요인 때문에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것일 뿐, 사기 고의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피고인은 별다른 자본 없이 갭투자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했다”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자산이나 채무 등을 파악하지도 않았고, 자금이나 임대차 비용을 정리하는 경리 직원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비정상적으로 사업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임대차 보증금을 상환해야 하는 채무로 보지 않았다. 비상시에 대비해 알선 자산을 적립하지도 않았고 경기 침체나 부동산 정책 변경 등 사업 리스크 관리 대책도 전혀 마련해 두지 않았다”고 질책하며 “남의 돈을 받아서 이렇게 사업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꾸짖었다.
김 판사는 “투자 사기와 달리 임대차 보증금은 서민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고 주거 안정과도 밀접한 것이라 피해가 더 극심하다”며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 중 1명은 목숨을 끊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에게 받은 보증금 수십억 원을 양평군 토지 매수, 태양광 사업,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투자했지만 투자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며 “그런데도 개인적 취미를 위해 게임 아이템에 최소 13억원을 소비하고, 법인카드로 15억원을 카드깡 하거나 재산을 은닉한 정황도 보여 준법 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정씨가 감정평가사인 아들에게 감정가를 부풀리는 등 ‘업(Up) 감정’을 하게 했다는 혐의(감정평가법 위반)에 대해선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되긴 했으나 얼마나 초과했는지 알 수 없고, 감정평가 법인의 심사를 거친 점 등을 고려하면 유죄를 선고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