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기차 관세 장벽이 높아지자,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차(Hybrid EV)로 방향을 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으로 수출하는 하이브리드 차량 비중은 1분기 9%에서 3분기 18%로 급증했다.
9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비야디(BYD), 상하이자동차(SAIC) 등은 지난 10월부터 부과된 유럽연합(EU)의 전기차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 수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월말 중국산 수입 전기차에 5년간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관세율을 최대 45.3%로 인상했는데, 하이브리드차에는 이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벨기에 지브뤼헤 항구에 중국에서 생산된 BYD의 신형 전기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모습.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관세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높아진 점도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전략을 수정한 배경이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에 따르면 9월 EU 신규 판매 차량 가운데 하이브리차 비중이 32.8%를 기록해 휘발유 차량(29.8%)보다 높게 나타났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10월 통계에도 하이브리드차 비중은 33.3%로 휘발유 차량(30.8%)보다 판매량이 많았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 중에서도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Plug-in HEV)다.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 같은 충전 배터리가 탑재된 하이브리드차로, 지난 3분기 기준 중국 BYD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40.1%를 차지한다. 2, 3위 업체도 모두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다.
중국자동차연석회의(CPCA)에 따르면 올해 7∼10월 중국 완성차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판매한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6만5800대를 기록했다. 중국이 유럽에 수출한 자동차 중 하이브리드차와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18%까지 치솟았다. 올해 1분기 9%에서 2배 늘었다.
중국 전기차가 그랬듯, 중국 하이브리드차의 가장 큰 경쟁력도 가격이다. 저렴하고도 성능 좋은 전기차로 유럽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어듯,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도 같은 전략을 펼치고 있다. BYD는 최근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실 U DM-i'를 출시해 폭스바겐 티구안, 토요타 C-HR PHEV와 경쟁하고 있다. 실 U DM-i는 토요타와 폭스바겐 모델보다 최대 500만원가량 저렴하다. BYD는 유럽에서 내년에 새로운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 모델 3종도 출시할 예정이다.
BYD가 유럽 현지 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BYD는 오는 2026년부터 헝가리 공장에서 전기차와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헝가리 공장이 가동되면 관세 장벽을 피할 수 있고 수출 물류비 등 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S&P글로벌모빌리티의 애널리스트 이언 플레처는 “중국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를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로 일부 대체할 것이며, 특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에 부과되는 관세가 낮은 점을 (중국 업체들이) 활용할 경우 치열한 가격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표 모델은 준준형 SUV인 투싼 하이브리드다. 유럽에서 이 모델의 올해 1~9월 누적 판매량은 4만1313대이며, 그뒤를 소형 SUV인 코나 하이브리드(2만5829대)가 받치고 있다. 기아 차량 중엔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와 니로 하이브리드가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럽의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완성차업체들의 하이브리드차량 출시를 예의주시하며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투싼 하이브리드를 필두로 한 경쟁력 있는 SUV 하이브리드 모델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싼 하이브리드의 올해 1~9월 유럽 시장 누적 판매량은 4만1313대를 기록 중이다. 사진 현대차
박영우 기자 novemb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