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새벽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직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통제실 내부에 마련된 별도의 보안 시설에 들어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소수만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10일 나타났다. 약 30분간 진행된 당시 회의에서 모종의 법리 검토가 이뤄진 정황도 파악됐다.
10일 군 안팎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1시에서 1시 30분 사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같은 경내에 있는 합참 지하 3층의 전투통제실로 건너왔다. 그 직전인 오전 1시쯤 국회 본회의장에선 여·야 의원들이 190명 재석·190명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처리했다.
전투통제실을 찾은 윤 대통령은 그 안에 별도로 마련된 ‘결심지원실(결심실)’로 들어갔다. 소수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합참 결심실은 ‘보안시설 안의 보안시설’로 꼽힌다. 말 그대로 군 수뇌부가 안보 등과 관련한 사안을 결심하기 위한 회의 장소로, 소수 인원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윤 대통령이 4일 새벽 1시를 조금 넘겨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고 밝혔는데, 결심실에 들어가 별도의 회의를 했다는 사실은 처음 확인됐다.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 곳에선 사실상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박안수 총장 세 사람이 회의를 했다. 한 군 소식통은 “회의는 최소 30분 정도, 꽤 장시간 이뤄진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김선호 국방부 차관과 김명수 합참의장 등 대다수의 군 수뇌부는 회의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소식통들은 “결심실 밖에 있던 실무진은 계엄법과 국회법 등 법률 관련 내용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당 법률 중 정확히 어떤 부분을 검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계엄 해제를 위한 법적 절차 점검과 불복을 위한 검토 시나리오 모두 가능한 만큼 회의 내용도 결국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군방첩사령부가 최근 작성한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에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관한 법률 검토가 포함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면 내란 수사에서 혐의 사실이 추가될 여지도 있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국회의 해제 결의에 침묵을 지키다가 약 3시간 20분 지난 4일 오전 4시 27분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엄법 11조는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 이럴 경우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무회의 소집 등 해제 절차를 가동해야 할 시간에 극소수의 군 수뇌부를 모아놓고 회의를 연 것이다.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의결은 오전 4시 30분에야 이뤄졌다.
다만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결심실은 회의 내용을 녹취·기록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공간은 아니라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당시 참석자들이 별도의 기록을 남긴 게 아니라면, 회의 내용 확인은 당사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날 결심실 회의는 윤 대통령이 계엄의 ‘시작과 끝’을 김 전 장관 등 믿을 수 있는 소수하고만 논의했다는 정황을 뒷받침한다. 계엄의 전 과정에서 김 전 장관을 제외한 정부 외교안보라인 인사 대부분이 배제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3일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심야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보실장·국정원장은 법률상 국무회의의 위원은 아니지만, 통상 주요 국무회의에는 배석 형식으로 참여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안보와 직결된 계엄 관련 국무회의에서 신 실장은 제외됐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심야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국방부 장관에 이어 명실상부 군의 ‘넘버 투’인 김명수 합참의장 역시 계엄 논의 전·후 과정에서 ‘패싱’ 수준으로 소외됐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10시 30분부터 4일 오전 1시까지 국회 병력 투입 등 계엄군의 진행 상황을 전화로 직접 챙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 현장 지휘관들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일명 ‘비화폰’을 직접 연결했는지, 혹은 당시 상황을 조언하고 도운 참모가 있었는지도 관심사다. 다만 통신 체계상 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각 군 지휘관들에게 곧바로 전화를 거는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