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가 10일 오전부터 여인형(55) 국군방첩사령관을 내란·직권남용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2시간 조사 후 귀가시켰다. 여 사령관은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에 들어온 뒤 이날 오후 10시 30분이 넘어 귀가했다. 당초 소환조사 첫날 긴급체포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검찰이 신병확보를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일단 돌려보낸 것이다. 

여 사령관은 ‘내란 수괴’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 ‘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계엄의 사전 모의부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또 다른 ‘키맨’이다.

여 사령관은 계엄 당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권순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주요 요인 10여명의 체포를 위해 휴대전화 위치정보 추적을 요청한 의혹을 받는다.

여 사령관이 지휘하는 방첩사는 계엄을 대비한 문건(‘계엄사령부·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을 만들고, 계엄 당일 윤 대통령 지시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동한 곳이다. 위법·위헌 요소가 지적된 ‘포고령 1호’ 작성 실무를 맡았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야권은 여 사령관이 ‘계엄 설계자’라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 경호처장일 당시 처장 관사에서 부정선거 의혹 수사 등을 포함해 계엄 관련 사전 논의를 나눴다는 이른바 ‘관사 모임’ 멤버라는 의혹이다.


검찰은 전날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여 사령관을 비롯해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을 ‘내란 공범’으로 적시했다.

다만 여 사령관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입장문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너무도 죄송하다”며 “방첩사는 기무사 해체 트라우마로 부대원 모두가 계엄령에 매우 민감하다. 만약 사령관이 미리 알고 준비했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모두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대 출동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국회나 선관위 근처까지 가다가 복귀했다. 방첩사가 계엄령을 사전에 알지 못하였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같은 날 경기 과천 소재 방첩사와 여 사령관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방첩사 간부들은 “정치인 체포 및 선관위 서버 복사 지시를 받았다”고 여 사령관과는 다른 증언을 쏟아냈다.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여 사령관이 제게 ‘중앙선관위 서버를 복사하고 통째로 들고 나오라’고 구두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 1처장이 지휘한 선관위 출동팀은 여 사령관의 명령이 위법해 이행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은 “정치인 체포와 관련된 지시와 B1 벙커 안에 구금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는 제가 여인형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말했다.

방첩사의 계엄 준비 증거라는 의혹이 제기된 ‘참고자료’ 문건도 논란이 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재구성해 공개한 이 문건에 따르면, 방첩사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시 대통령 거부권’, ‘계엄 관련 국민의 부정적 인식으로 임무수행 제한 시 대책’ 등을 주요 쟁점으로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 말미에는 10·26 사태 이후 전국 계엄령 확대로 5·18 민주화 운동을 촉발했던 1980년 5월 17일의 ‘계엄포고령 10호’ 등이 참고사항으로 첨부돼 있다.

이와 관련 정성우 1처장은 “문제의 문건은 전임 황유성 사령관 재직 시인 지난해 7월 비서실에서 작성한 문건”이라며 “지난해 2월 (한미연합훈련인) UFS 연습 간부 교육 토의 결과를 반영해 계엄 업무 실무 편람과 해설서, 각종 공개 자료를 종합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말쯤 하는 일반적인 업무냐’는 질의에 “연말에 일상적으로 검토하는 자료는 아니다”고 답했다. 반면에 나승민 방첩사 신원보안실장은 “(방첩사에서) 작성한 바 없고 저는 관련자가 아니다”, 이창엽 방첩사령관 비서실장은 “저는 작성한 적 없다”고 밝혔다.

이 비서실장은 여 사령관이 비서실에 ‘포고령 작성’을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도 “제가 아는 바로는 없다”고 답했다. 앞서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포고령은 내가 직접 작성하고 윤 대통령과 상의해 내용을 확정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