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에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군 수뇌부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사전에 계획된 계엄이었다는 진술이 이어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직전에 민생 대책 마련을 지시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서 “1일 전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유선 비화폰으로 지시를 받았다”며 “제가 받은 임무는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셋(3곳), 더불어민주당사, 여론조사 ‘꽃’(친야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업체) 등 6개 지역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임 국방부 장관은 김용현 전 장관을 말한다. 김 전 장관도 검찰 조사에서 “계엄 선포 며칠 전 윤 대통령과 독대해 비상계엄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아무리 늦어도 계엄령 발동 이틀 전인 1일엔 계엄에 대한 결심이 선 것으로 추정된다. 결행 시기를 언제 정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계엄 선포 뒤 계엄군 각자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는 최소한 3일 심야 계엄 발령 이틀 전에 통보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 대통령이 계엄과는 너무 동떨어진 민생 관련 정책 주문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발령 36시간여 전인 2일 오전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도 성태윤 정책실장과 박춘섭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나섰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계엄 12시여 전인 3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세제 혜택, 규제 혁신,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한 특단의 소비 진작 방안을 강구해 주시기 바란다”고 내각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내수·소비 진작 대책’ 지시에 대통령실과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 또한 윤 대통령의 지시가 왜 나왔는지, 어떤 대책이 발표될 건지에 관심을 두고 관련 취재에 집중했다.
윤 대통령은 2일 오후에도 충남 공주를 방문해 민생토론회를 주재한 뒤 공주 산성시장을 찾아 라디오방송 부스에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으로서 열심히 일하겠다”며 “여러분들 저 믿으시죠?”라고 묻기도 했다.
이렇듯 계엄 선포 직전 윤 대통령의 공개된 행보와 은밀한 행보가 상반되면서 일각에선 “일부러 시선을 돌리려고 계엄과는 전혀 상관 없는 지시를 강력하게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계엄을 비밀리에 추진하던 대통령이 나름의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상대에게 그럴듯한 속임수를 써서 공격하는 행동) 전술을 쓴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정진석 비서실장과 신원신 국가안보실장까지 계엄 직전까지 윤 대통령의 계획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