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 실명∙합참 극비시설 생중계…계엄 사태로 軍기밀 쏟아졌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이 투입된 경위 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군 기밀 노출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안보 자산 손실이 우려되는 가운데 군 수뇌부가 제 입으로 작전 기밀 사항 등을 앞다퉈 공개하면서 북한이 이를 역으로 대남 공세에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인 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인 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OOO 아냐 모르느냐"…요원 실명 생중계

지난 10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엄 당일 '20명 체포조' 의혹 등을 질문하며 최소 5명의 정보 요원의 실명을 공개했다. 특정 요원의 실명을 대며 "OOO 알아요 몰라요?"라고 묻는 식이었다. 이에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사령부 저희 인원"이라며 이들이 정보사 요원임을 시인했다.

정보사는 대북·해외 비밀공작에 특화된 기관으로 요원 관련 정보는 극비다. 신분을 감추고 첩보 활동을 하는 만큼 한 사람의 신원만 특정돼도 한국 측 다른 요원들과 이들의 해외 정보원까지 줄줄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일단 신분이 노출되면 이들이 구축한 정보망은 송두리째 잃게 된다.

군 내부 인트라넷인 국방망에서도 정보사 요원에 대한 신원 조회는 인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날 국방위에서 "정보 요원은 중요한 자산인데 이름을 대면 큰일 난다. 저희가 쌓아온 굉장한 자산들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는 탄식이 나온 이유다.

정보 요원의 실명 공개에 대한 지적에 박 의원 측은 본지에 "무장상태로 선관위에 들어가 반란에 가담하는 순간 정보 요원으로서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이들을 보호해 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선관위에 들어가 서버를 촬영한 군인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뉴스1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선관위에 들어가 서버를 촬영한 군인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뉴스1

"전투 통제실은요"…내부 구조 자진 실토

질의와 답변이 오가는 과정에서 유사시 군 지휘부의 통신 체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뤄지면서 기밀 송수신망의 작동 기제가 일부 노출되기도 했다. 

지난 4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모였던 합참 지하 3층의 전투통제실의 구조를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이 자진해서 묘사하는 일도 있었다. 박 총장은 손짓을 동원해 "합참에 가보면 한층 높은 (지하) 3층에 전투 통제실이 있다"며 "회의실은 지휘·회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필요 시 화상도 할 수 있고…"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그런 것 다 얘기해도 되느냐. 보안에 걸리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총장이 중요한 전투 시설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답변을 끊어야 한다"(김선호 국방부 차관)는 목소리도 다급히 나왔다.

유사시 북한의 제1 표적이 될 수 있는 군 지휘부의 통신 체계와 핵심 시설을 국회의원과 군 고위관계자들이 다 털어놓으면서 추후 한국 안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사태로 그간 쌓아온 정보망과 첩보 체계가 상당 부분 노출된 만큼 이를 변경해야 할 수 있는데, 치러야 할 비용도 상당하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있다. 뉴스1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계엄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국면에서 북한 지휘부 제거에 투입될 특수 장비와 부대 관련 세부 사항이 전부 노출된 셈"이라며 "북한이 한국의 무장 수준과 지휘 체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죄 면하려 '작전 디테일' 앞다퉈 공개

"부하들은 죄가 없다"며 쏟아낸 군 관계자들의 '양심 고백'에도 공개하면 안 될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계엄 당시 국회 진입에 대해 '비살상 무기를 사용한 무력 진압 작전'이라며 훈련명을 공개했다. 이어 "테이저, 공포탄, 방패, 케이블타이를 이용했다"며 부대원들의 무장 장비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려다 군의 무능함을 실토하는 상황도 있었다. 김 단장은 "(헬기에서) 내려보니 국회의사당이 너무 컸다. 티맵(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으로 구조를 확인했다"며 특임단이 작전 지역의 지형조차 제대로 파악 못 했다고 털어놓았다.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면서다.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제707특수임무단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진입을 위해 투입됐다. 연합뉴스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제707특수임무단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진입을 위해 투입됐다. 연합뉴스

국정원, 尹과 대화 그대로 노출

이런 가운데 국가정보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비공개 발언을 그대로 전하기도 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지난 7일 KBS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다 때려죽여, 핵폭탄을 쏘거나 말거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쟁 준비에 총매진하자"(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난달 15일)고 위협하는 북한이 충분히 대남 도발의 빌미로 삼을 수도 있는 발언이다. 무엇보다 이는 일방의 주장이라 진위도 명확지 않다.

이외에도 홍 전 1차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김병기 민주당 의원을 통해 '대통령님'과 '[무선보안] 1000번'이라고 명시된 비화폰의 수·발신 통화 내용까지 언론에 공개했다. 비화폰은 도·감청이 불가능한 보안 전화기로, 기밀 등을 다루는 고위 당국자들만 사용한다. 이를 자의로 공개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계엄 국면에서 조태용 국정원장과 홍 전 1차장은 정치인 체포 지시를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홍 전 1차장은 또 박선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조 원장에 대해 "뺀질이 성격. 비상계엄 동조 또는 방조"라고 적절치 못한 표현까지 써가며 비방했다. 국정원 수뇌부가 공개적으로 파열음을 낸 것 자체가 북한에 향후 오판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국회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홍장원 국정원 전 1차장의 지난 3일 통화내역 화면을 취재진 앞에 보여주는 모습. '대통령님', '[무선보안] 1000'이라고 돼있다. JTBC 화면 갈무리

지난 6일 국회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홍장원 국정원 전 1차장의 지난 3일 통화내역 화면을 취재진 앞에 보여주는 모습. '대통령님', '[무선보안] 1000'이라고 돼있다. JTBC 화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