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비판을 주고받은 전공의 대표와 서울의대 교수 대표가 의사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직접 설전을 벌인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이 방에 속한 다른 사직 전공의들도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는 등 10개월째 장기화되는 의정갈등 국면에서 의료계의 투쟁 방식을 두고 내부 분란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과 강희경 전 서울대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은 지난 8일 의료계 인사 80여명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들의 갈등은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강 교수가 의사 등 500여명이 모인 다른 단체 카톡방(단톡방)에서 지난 7일 “박단이 무슨 활동을 했는지요? 정책을 제안했나요? 전공의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했나요?”라고 의문을 표한 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이에 박 위원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의료가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서울의대 교수들은 무엇을 했습니까”라며 “강희경 당신은 교수로서 무엇을 했습니까. 권력에 맞서 본 적은 있습니까”라고 강 교수를 직격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교수들이 행동해야 합니다. 선택지는 많습니다”라며 진료지원인력(PA)에 대한 의료행위 지시 거부, 대리처방 중단 등을 언급했다. 의료현장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이런 행위들만 중단해도 의사들의 주장이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행동하지 않는 교수들이 아쉽다는 취지다.
지난 8일 밤, 강 교수가 이런 박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을 캡처해 두 사람이 모두 속한 단톡방에서 올리면서 본격 설전이 시작됐다. 이 단톡방은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의료정책최고위 과정 33기 수강생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교수와 전공의 등 의사 80여명이 속해있다.
강 교수가 올린 캡처를 보고 사직 전공의인 임진수 의협 기획이사는 “의료계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 분열만 조장하는 박단 선생은 대전협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뭘 했느냐”며 “정신 차리십시오, 박단 선생. 당신이 이렇게 글을 쓰는 짓거리 때문에 의료계의 세대갈등이 조장되고 사태 해결이 요원해진다”고 비판했다. 그간 전공의들의 ‘단일대오’ 투쟁에 구심점 역할을 해온 박 위원장을 공개 비판하는 의료계 목소리가 전무했는데, 강 교수의 의문 제기에 이어 정면 비판이 나온 것이다.
그러자 박 위원장은 “강희경 교수의 (제 페이스북 글) 공유와 임진수 선생님의 비호. 재미있는 조합이군요”라며 비꼬는 듯한 말로 응수했다. 임 이사는 재차 “대전협 비대위원장으로서 사태 해결을 위해 교수 욕, 내부 분열 조장 외에 또 뭐하셨는지?”라고 물었으나, 박 위원장은 “강희경, 임진수 두 분 건승하길 바란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달 탄핵당한 임현택 의협 회장과 줄곧 각을 세워왔는데, 강 교수의 남편과 임진수 이사가 임현택 전 회장 집행부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반감을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이 단톡방에서는 “임현택 집행부에서 저를 비난했던 분 중 한 분이 (강희경) 교수님 남편”(박단) - “연좌제 금지가 헌법에 처음 규정된 것은 1980년이라고 하더군요^^”(강희경) - “그만하시죠. 더 할까요.”(박단) 등 가족까지 거론하는 입씨름이 이어졌다. 다른 단톡방 인원들이 갈등을 만류하며 진화되는 듯했지만, 박 위원장은 재차 강 교수를 향해 “제 글에 대해 서울의대 교수님들의 입장은 있었으면 합니다. 최소 PA에 대해서라도. (의사) 아이디 (간호사와) 공유나 대리처방은 그만하셔야죠”라고 압박했다.
강 교수는 “저는 진료시 대리처방하지 않습니다만”라고 답했으나, 이 방에 있던 김은식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대표는 “다른 서울의대 교수들 중에는 아이디 공유나 대리 처방하는 분들이 있다는 거군요”라며 강 교수를 향한 공격에 가세했다. 박 위원장이 이끄는 대전협 비대위 일원인 김 대표는 “한때 서울의대 교수 단체의 장이었던 분이 자기만 빠져나가려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 어떤 단체의 장을 맡으시든 그려질 모습은 뻔해 보입니다”라는 비아냥도 덧붙였다. 강 교수가 “제가 (대리처방을) 하고 있지 않아서 상황을 모른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확대 해석은 사양한다”고 답하면서 한밤 설전은 끝났다.
지난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이 해를 넘기게 된 가운데, 향후 의료계 투쟁을 주도할 의협 차기 회장 선출(내년 1월)을 앞두고 의료계 내분도 커지는 모습이다. 집단사직한 전공의들을 대표하는 대전협은 사태 초반부터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 최근까지도 ‘모집 중단’을 주장하면서 그 외 다른 타협안은 거부하고 있다. 동시에 대통령실, 소비자 단체 등과 대화하며 의료계 입장을 설득하려는 강 교수를 비롯한 대화파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반면, 강 교수는 “10개월간 단일대오 투쟁만 주장하며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더 이상 의사들 내부의 힘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국민과 연대를 강조하는 메시지로 의협 회장 선거운동을 펴고 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대안 제시 없이 ‘증원 백지화’만 외쳐서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여전히 다수는 미복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