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이 위치추적을 하려했던 인사들 중에 현직 판사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를 수사 중인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조지호 경찰청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2일 파악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조 청장은 특수단 조사에서 “지난 3일 계엄 선포 직후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정치인 등 15명가량의 위치를 추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그 중에는 김동현이라는 현직 판사도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 청장이 여 사령관으로부터 위치 추적 대상 명단을 듣다가 생소한 이름이 있어서 “누구냐”고 물으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무죄를 선고한 판사”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앞서 여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주요 인사의 체포를 위한 위치추적을 홍장원 국정원 1차장과 조지호 경찰청장 등에게 요청한 사실을 인정한 상태다. 명단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인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이 포함돼 검찰과 경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에 현직 판사까지 위치 추적 대상에 포함된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계엄 세력이 입법부뿐 아니라 사법부까지 무력화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어서 향후 큰 파장이 예상된다.
김동현 판사는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위증은 있었지만, 위증교사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의 부장판사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출신인 김진성씨를 회유해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사건에 대한 거짓 증언을 시킨 혐의(위증교사)에 대한 것이었다.
조 청장은 경찰 조사에서 “계엄 선포된 후인 오후 10시 30분쯤 여 사령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 주요 인사의 위치 추적 요청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명단에 김 판사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여 사령관은 조 청장에게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조 청장은 특수단에서 “위치 추적 요청 명단엔 15명가량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위치추적 자체가 불법이고, 위치추적을 하려면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는데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서도 “대통령의 지시문을 찢었고, 여 사령관의 정치인 등 위치추적 요구를 거절했으며,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체포 지시도 거부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항명을 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조 청장은 지난 3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된 직후 주변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조 청장은 비상계엄 포고령 발령 뒤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전화로 “계엄법 위반이니 국회의원 등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6차례에 걸쳐 받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또 계엄 해제 뒤 후배 경찰 간부에게 전화해 “(대통령) 지시를 어겨 계엄이 빨리 끝난 것”이라며 “대통령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경찰 간부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주의를 구한 것인데 왜 사표를 내느냐”며 만류했다고 설명했다.
조 청장은 계엄 발령 전 윤 대통령 대통령 안전 가옥에서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회동한 상황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종북 좌파, 국회 탄핵 등을 반복하며 5분간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5분 만에 대통령이 떠난 뒤 김 청장과 ‘우리를 시험하는 것인가. 모의 훈련 아니냐’고 할 정도로 놀랐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7시 50분쯤 공관으로 돌아와 부인과 ‘왜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고 대화한 뒤 도저히 명령을 이행할 수 없어 지시사항이 담긴 종이를 찢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내란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조 청장은 13일로 예상되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대통령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는데 계엄에 동조한 것처럼 오해받는 상황이 돼 경찰 구성원들에게 죄송하다”며 “흔들림 없이 경찰 본연의 임무 수행해주시길 마지막으로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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