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업체가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면서 K배터리와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이 유럽 내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에도 공장 건설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으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시장 점유율 사수에 비상이 걸렸다.
CATL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스페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5대5 지분으로 41억 유로(약 6조1000억원)를 투자한다. 최대 5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으로, 연간 전기차 약 7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2026년 말 완공 예정이고, 독일·헝가리에 이어 CATL의 유럽 내 세 번째 공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이 중국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해왔지만, 가장 큰 희망인 스웨덴 노스볼트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좌절됐다”라고 짚었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사들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유럽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10월 글로벌(비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의 점유율은 26.4%로, LG에너지솔루션(25.9%)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배터리 3사의 점유율(45.6%)은 전년 동기 대비 2.7%포인트 하락했다.
CATL “미국이 허용하면 공장 짓겠다”
CATL이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중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테슬라 전기차 생산 및 판매의 절반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은 머스크에게 미·중 관계 중재자 역할을 기대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테슬라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한국 업계에 매우 부정적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미 투자 강화한 한국, 시장 선점 전략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수년 전부터 미국 직접투자를 확대해온 만큼, 미국 시장을 선점해 중국에 내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총 생산능력이 53GWh 규모인 애리조나주 단독 공장을 포함해 미국에서만 7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인디애나주 1공장을 이달 중 가동하고, 이미 조지아주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SK온은 포드와 합작 공장도 내년에 가동한다.
중국 배터리사의 미국 투자가 현실화하려면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세호 LG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배터리의 강점은 가격 경쟁력인데, 미 현지에서 생산하려면 인건비와 환경 규제 등으로 지금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은 첨단 기술뿐 아니라 제조 능력도 중요한데, 중국 업체가 미 현지에서 인력을 뽑고 교육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