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국회 통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 조지호 경찰청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저는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다"는 담화 내용에 말없이 웃음만 지었다고 변호인이 전했다.
조 청장의 변호인 노정환 변호사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 12일 조 청장을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접견해 윤 대통령의 담화 내용을 알려주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또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후 총 6번 조 청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이 과정에서 "의원들 다 잡아들여. 계엄법 위반이니까 체포해"라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청장은 불법적인 지휘로 판단해 모두 거부했다는 게 노 변호사의 주장이다.
국수본 관계자도 이날 취재진 브리핑에서 "이러한 지시가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참모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묵살했다"며 사실상 항명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말했다.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계엄 당일 국회를 통제하는 등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지난 11일 오전 긴급체포된 뒤 이날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뒤 조·김 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4만 경찰의 수장인 경찰청장, 서울 치안의 총책임자로 사실상 2인자인 서울청장이 동시에 구속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남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계엄 전 윤 대통령과 안전가옥(안가)에서 회동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게 결정타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조 청장과 김 청장은 계엄 발표를 앞둔 지난 3일 저녁 7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 '장악 기관' 등 계엄 계획이 적힌 A4 문서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국회와 경찰의 1차 조사 등에서는 이 사실을 숨겼었다.
조 청장은 안가 회동 뒤 공관으로 이동해 아내에게 "말도 안 된다"고 말하며 A4 용지를 찢었다고 진술했다. 김 청장도 해당 문건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런 행위를 증거인멸 시도로 판단해 지난 12일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