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열흘 넘게 친한계(친한동훈계)와 친윤계(친윤석열계)가 사사건건 충돌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심리적 분당”이라는 시각부터 “당이 쪼개지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 결국은 봉합해 갈 것”이라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친윤계의 갈등은 계엄 당일부터 시작됐다. 한 대표를 비롯한 친한계 의원 상당수는 곧장 본회의장으로 들어가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지만, 친윤계 의원들은 국회 밖 당사에 머무르거나 국회에 진입하고도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 대표와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양측의 충돌은 12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가장 격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29분 대국민담화 직후였다. 연단에 선 한 대표가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의 내용”이라고 직격하자, 친윤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엇을 자백했다는 말씀인가” “그냥 내려와라” “사퇴하라” 등의 고성을 질렀다. 같은날 한 대표가 오후 10시에 윤 대통령의 탈당·제명 등을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를 열자 “집권여당의 현직 대통령 제명은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일”(강명구 의원)이라는 반발이 이어졌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한동훈 대표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대해 비판하자 한 의원이 일어나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친윤계에선 탄핵안 통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영세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안 가결 시 지도부 총사퇴 필요성에 대해 “엄청난 사태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한동훈과 레밍의 반란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지도부를 총사퇴시키고 반군들은 비례대표 빼고 모두 제명처리 하라”고 적었다.
반면 한 대표 측은 “처음부터 윤 대통령의 계엄에 대해 위법·위헌이라고 했고, 계엄 해제 표결에 앞장섰던 한 대표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해야 비대위로 전환된다. 현재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은 친윤계 3명(김민전·김재원·인요한)과 친한계 2명(장동혁·진종오)인데, 친윤계 3명이 모두 사퇴해도 친한계 2명이 사퇴하지 않으면 현 지도부는 계속 유지된다. 장동혁·진종오 의원은 아직까지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장동혁 최고위원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를 기다리며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당내에선 한 대표와 ‘원조 친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분간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당을 운영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14일 의원총회에서 권 원내대표가 개인 의견을 전제로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자”고 제안한 것 역시 당 분열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관측이다. 당 관계자는 “친한계·친윤계 모두 ‘당이 깨지면 2017년 대선처럼 끝장’이란 인식은 같다”며 “서로 양보하며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그간 ‘윤·한 갈등’에서 한발 벗어나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의 존재감이 커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오 시장은 지난 12일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탄핵소추를 통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한편 국민의힘 당 대표를 지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1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 대해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완벽한 몰락”이라며 “이제 보수 정치권에 대한 대변혁이 예고된다. 결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