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선택적 인사권’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 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똑같은 인사권을 놓고도 헌법재판관 임명과 장관 임명에 들이대는 여야의 잣대가 아전인수 격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0일 열린 ‘국정 안정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임명이 시급하다”며 “권한대행께서는 안보와 치안 유지가 국정 회복의 첫 걸음이라는 각오로 두 장관에 대한 임명을 조속히 결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권 대행은 그러면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는 한 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헌법기관 구성 권한은 행정부 수반이 아닌 국가원수의 지위에서 나오는 권한”이란 이유다. 권 대행은 전날 국민의힘 비상의원총회에선 “현재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행위는 마치 검사가 자신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 판사를 임명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조한창)과 더불어민주당(마은혁·정계선)이 각각 추천한 이들 3명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은 23~24일 인사청문회를 열어 26~27일 즈음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의결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은 “일방적”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역시 한 대행에게 엇갈린 주문을 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대신 ‘총리’라는 호칭을 쓰며 “한덕수 총리는 헌법재판관 임명 등 아주 긴급하고 필요한 인사가 아니면 대통령 임명 직위의 인사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공공기관 인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 후로 미루고 정부 고위공직자 승진 인사 등도 동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결국 여당은 ‘헌법재판관만 빼고’, 야당은 ‘헌법재판관만’ 인사권을 적극 행사하라는 선택적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총리실은 난처한 상황이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권 대행의 장관 임명 요구에 대해 “(한 대행이) 더 얘기한 부분은 없다”며 “아직 절차가 진행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총리실 고위관계자도 “장관 임명과 관련해선 국민의힘과 따로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총리실이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장관 임명 요구를 한 건 한 대행에게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전날 양곡관리법과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한 대행은 당분간 숙고할 것으로 보인다.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쌍특검’의 거부권 법정 시한은 내년 1월 1일인 만큼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게 총리실의 방침이다.
민주당이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동의안을 가결시켜도 즉각 임명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2017년 당시 이선애 헌법재판관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20일이 지나 임명됐다”며 “임명 여부를 빨리 결정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인사청문회법엔 국회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내야 하는 시한 등은 규정돼 있지만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한 인사에 대해 대통령이 언제까지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