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경제학』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41년만에 강단 떠난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홈페이지 캡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홈페이지 캡처

 
경제학도의 필독서로 꼽히는 『미시경제학』의 저자 이준구(76)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41년 만에 서울대 강단을 떠난다. 그는 27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경제학부의 배려로 오랜 기간 강의를 했으니 이제는 스스로 용퇴(勇退)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이를 너무 먹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도 “지난해 학기 중 학부장을 만나 강의를 그만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마지막 강의라고 생각하니 학생들 하나하나가 더 귀했다”며 “학교에 나와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전과 똑같이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2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80년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84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2015년 2월 서울대 정교수직에서 은퇴해 명예교수가 됐지만, 지난해 2학기까지 경제원론2 과목을 가르쳤다.

강단을 떠나며 이 교수는 서울대 제자들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표했다. 그는 “미국에서 4년 동안 가르쳤던 적지 않은 학생 중에선 기억에 남거나 연락이 오가는 제자가 하나도 없다. 이에 비해 서울대에서 거쳐 간 수많은 제자는 대부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사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 이것이 바로 가르치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직접 가꾼 서울대 사회과학관 앞 야생화 화단 앞에서 웃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직접 가꾼 서울대 사회과학관 앞 야생화 화단 앞에서 웃고 있다. 중앙포토

 
이 교수가 제자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97년 펴낸 『경제학원론』을 비롯해 『미시경제학』등은 경제학도들에게 바이블로 통한다. 이 교수는 지난 15일 『경제학원론』 제7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리며 “5년마다 돌아오는 개정 작업을 할 때 무엇을 새로 넣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제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책의 오타를 잡아낸 게시글에 “고맙다. 또 발견하면 가르쳐 달라”고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 교수가 2008년 올린 글은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이 교수는 “미시 성적을 처리하는 조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번 학기 말 평균이 110점 만점에서 38점인데 어떻게 하느냐’고 상의를 했다”면서 “어려운 수학 하나도 없고 가르쳐주지 않은 것도 하나도 없다. 다만 여러분이 맹목적인 암기식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응용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해 손을 못 댄 것”이라고 썼다.

 

이준구 교수가 2008년 6월 '재정학 채점 후기'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글 일부. 홈페이지 캡처

이준구 교수가 2008년 6월 '재정학 채점 후기'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글 일부. 홈페이지 캡처

  
이 교수는 수업에서 복잡한 수식보다는 간결한 설명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재학생 안준엽(24학번)씨는 “지난해 1·2학기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학생들에게 재밌고 친근하게 잘 다가와 주셨다”며 “많이 칭찬해주시고 밥도 자주 사주시던 교수님의 수업을 더는 못 듣게 돼 아쉽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0년에 이 교수의 수업을 수강했다는 한 졸업생(19학번)은 “비대면 수업을 할 때도 매주 꽃 사진과 함께 퀴즈를 올려주셨던 낭만적이고 따뜻한 분”이라고 회상했다.

정치 상황을 꼬집는 발언도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 다음 날 “한국의 민주 질서가 아직도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걱정이 들었다. 남은 일은 누가 어떻게 헌정 질서를 유린하는 데 가담했는지 낱낱이 밝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이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1년엔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정책에 관해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도 많다”는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