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이바흐 끌며 "투자해" 유혹…90억 사기범 징역 9년

허위 투자·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 혐의 일당이 몰다 압수된 벤츠 지바겐, 마이바흐 차량이 경기남부경찰청 주차장에 서 있다. 손성배 기자

허위 투자·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 혐의 일당이 몰다 압수된 벤츠 지바겐, 마이바흐 차량이 경기남부경찰청 주차장에 서 있다. 손성배 기자

 
명품 옷을 입고 고가 외제 차량을 모는 홍보 영상 등으로 투자자를 유인한 가상자산 투자 사기 일당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투자회사 대표가 유명 증권회사 출신이라는 경력과 코인 거래 사이트까지 모두 가짜였고 피해자 중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는 지난 19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J 투자회사 대표 장모(31)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함께 구속기소된 공범 2명도 징역 5~8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장씨 등은 허위 가상자산 거래 사이트를 만들고 지난 2023년 5~11월 6개월간 피해자 131명으로부터 88억4800여만원을 속여 뺏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무허가 투자 업체를 운영하며 비슷한 기간 131명으로부터 65억6700여만원을 송금받은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도 받았다. 피해 금액은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10억원으로 조사됐다.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우리가 운영한 사이트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코인 거래를 이용한 도박사이트였고, 피해자들도 사실상 도박이라는 걸 알면서 거래를 했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실제 이 사이트에서 3분 뒤 시세 등락을 맞히면 투자금의 2배 이익을 얻는 구조로 도박 성격의 베팅이 이뤄지긴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장씨 등 일당이 코인 선물거래 투자를 권유했을 뿐 피해자들에게 코인 시세를 이용한 도박사이트라고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위 투자·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 혐의 일당이 운영하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비트코인 단체 공지방이라고 쓰여 있다. 자료 경기남부경찰청

허위 투자·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 혐의 일당이 운영하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비트코인 단체 공지방이라고 쓰여 있다. 자료 경기남부경찰청

 
법원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경제적 손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일부 피해자의 경우 투자 사기를 비관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죄책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해자들도 피고인들 말만 믿고 코인거래소나 거래 방식에 관해 면밀히 검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고수익을 얻을 목적으로 투자한 점에서 피해 발생, 확대에 책임이 없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배상신청은 각하하고 검사의 추징금 청구도 기각했다. 배상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고 피고인들이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장씨 등은 이 판결에 불복해 지난 2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단계부터 신차 기준 2억6000만원 상당의 벤츠 지바겐, 3억원 상당의 마이바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압수해 관심을 끌었다. 피고인들은 샤넬, 톰브라운 등 명품 옷을 입고 주로 서울 유명 호텔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특히 대표 장씨는 명문대에 졸업하고 서울 여의도의 유명한 증권회사에 오랫동안 다닌 투자 전문가라고 포장했으나 고교 졸업 이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음식점을 운영했고, 투자자문 회사에서 일했을 뿐 대학을 나온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