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 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폐강에…학생들 반발, 무슨 일

서울대 내에서 마르크스경제학 등 비주류경제학 과목 폐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광장. 이병준 기자

서울대 내에서 마르크스경제학 등 비주류경제학 과목 폐강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광장. 이병준 기자

 
서울대학교가 지난해 2학기부터 마르크스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 과목을 폐강한 것을 두고 부활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학생들은 지난달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 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9일 교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의를 다시 개설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기준 서울대 구성원 427명을 포함해 2494명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서명에 참가했다고 한다.

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는 1989년 1학기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고 김수행(2015년 작고) 교수가 경제학과에 부임하면서 개설된 뒤 지난해 1학기까지 35년간 이어졌다. 김 교수가 국내 최초로 완역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1~3권’을 중심으로 노동 가치 이론을 다루는 마르크스경제학·현대마르크스경제학 수업은 매년 1·2학기, 정치경제학입문 과목은 학기마다 개설됐다. 2008년 2월 김 교수가 정년 퇴임한 뒤엔 강성윤 강사가 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강의의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2학기부터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져 강의 수요가 매우 낮다”는 이유로 폐강됐다.

이에 대해 서마학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문의 다양성을 이유로 들며 비주류 경제학을 배울 권리를 주장했다. 서마학은 “경제학부는 마르크스경제학을 비주류로 간주하며 학문을 위계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학생들의 수요 역시 높다고 강조했다. 김선아(22·사회학과)씨는 “경제학부에선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마르크스경제학 등을 개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론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경제학부가 지난 3월 시행한 ‘2025년 하계 계절학기 수요조사’에 따르면 마르크스경제학(16명), 현대마르크스경제학(16명), 정치경제학입문(21명) 등은 주류 경제학으로 분류되는 거시경제이론(3명), 계량경제학(2명)보다 수요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학부는 거시경제이론 등 9개 과목만 이번 여름 학기에 개설했다.

 지난 9 일 ‘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 ( 서마학 )’ 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거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마학 측은 경제학부가 교육의 공공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박종서 기자

지난 9 일 ‘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 ( 서마학 )’ 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거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마학 측은 경제학부가 교육의 공공성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박종서 기자

 
경제학부 관계자는 “과목 개설 관련 수요는 학생들의 요구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 성과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판단하고 있다”며 “이번 여름 계절학기에 개설된 계량경제학은 전공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할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인공지능(AI) 확산과 함께 연구 및 교육 수요가 크게 는 과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고(故) 김수행 교수 고별강의가 서울대에서 열렸다. 중앙DB

지난 2008년 고(故) 김수행 교수 고별강의가 서울대에서 열렸다. 중앙DB

 
강성윤 강사는 “계절학기의 경우 학생들이 별도의 수업료를 내는데도 계절학기 개설을 불허했다”며 “학교에서 소수 전공인 마르크스경제학 분야를 아예 배제하는 과정인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경제학부 관계자는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최근 ‘학부대학 열린 전공’, ‘정치경제철학 연합전공’에 참여하는 등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비봉출판사가 내놓은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개정판. 사진 비봉출판사

2015년 비봉출판사가 내놓은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개정판. 사진 비봉출판사

 
현재 국내 대학 중 마르크스 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 과목이 개설한 학교는 극소수다. 한 국립대학 관계자는 “2000년대에 비해 수요가 줄어 교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지난 2020년 과목을 폐지했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다양한 세부 학문을 배울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전공 교수를 정식으로 채용하고 강의를 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