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투사라기보다 꼿꼿한 선비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의 말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다. 사무실은 장식 없이 일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운동의 제사장처럼, 6월 항쟁이나 전대협의 가치를 수호하려고, 저를 덜 타락시키려고 아등바등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5일 인터뷰를 한 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그래서 21일 몇 가지를 더 물었다. 30년 전 87년 헌법을 탄생시킨 주역인 그는 다시 개헌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민주당 측 간사다. 그는 “3월 15일 발의하면 되니까 87년에 핵심 쟁점을 타결하던 그런 시간으로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개헌은 왜 해야 합니까?
그런 부분을 굳이 헌법으로 규정해야 합니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고 하는데 몇몇 간부들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겠지만, 전대협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임현동 기자
“정치 갈등이 반복되는 악순환 구조를 헌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죽기 살기로 싸움이 반복되고, 지역 간 갈등이 반복되고… 이런 것들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정상적인 삼권분립이 아닙니다.”
‘4년 중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할 수 있나요?
국회에 무슨 권한을 더 넘긴다는 겁니까?
민주당 의원들도 분권형 지지가 많지 않나요?
정치를 왜 하셨습니까?
그는 고(故) 김근태 의원의 권유로 1999년 김대중 총재의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구로갑에 출마해 떨어지고, 17대에 당선됐다. 그 이후 이 지역에서 19, 20대까지 3선 했다.
변혁운동과 제도권 정치가 어떻게 달랐나요?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가라’고 했는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가 지나 정치세력이나 유력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개헌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너무 오래 운동권의 순결성에 집착해온 것 아닌가요?
그는 지난해 8월 13일간 민통선 335㎞를 횡단했다. 강원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통일이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일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상징으로 비무장지대(DMZ)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냉엄한 현실 속에서 우리 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민통선이라도 걸었습니다. 그때 마침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랬습니다. ‘북은 미사일을 쏘아도 우리는 평화를 쏘아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사일을 쏘는데 ‘평화를 쏴야 한다’는 말이 일반인에게 먹힐까요?
![이인영 민주당 의원과 일행이 지난해 8월 비를 맞으며 강원도 화천에서 철원까지 민통선을 따라 걷고 있다. 이 의원 일행은 13일 간 민통선을 종단했다. [이인영 의원 페이스북]](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24/44fff389-d69d-4f73-9a42-bc68efa56838.jpg)
이인영 민주당 의원과 일행이 지난해 8월 비를 맞으며 강원도 화천에서 철원까지 민통선을 따라 걷고 있다. 이 의원 일행은 13일 간 민통선을 종단했다. [이인영 의원 페이스북]
종교인이라면 순교하면 되지만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인은 안심시킬 비전을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은 핵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잖아요.
평창이 기회라고 했는데, 북한이 문 대통령을 초청했네요. 그런데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왜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합니까?
‘여건’은 뭘 말합니까?
![이인영 후보(오른쪽)가 2015년 2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표를 축하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24/ef8e6c40-b3f5-4283-8943-218b0e8a4be5.jpg)
이인영 후보(오른쪽)가 2015년 2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표를 축하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의 우려를 생각하면 미국이 보장해줘야 협상에 성공할 수 있지 않나요?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면 무엇을 얻어내야 합니까?
그건 시작이지, 받아낼 내용은 아니지 않나요?
북한이 대화로 선회한 것은 미국의 압박 전략의 성공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그는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통일로 더 커지는 대한민국을 꿈꾼다”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법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는 사회적 협약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주체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화하고, 조정하고, 타협하면서, 때로는 양보하고… 그럴 수 있는 길들을 찾는 것이 촛불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인영 의원(오른쪽)이 1994년 4월19일 고려대교정에서 문익환 목사(왼쪽)의주례로 전민련 활동 중 만난 이해학 목사의 딸 도레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2/24/c6eeb7eb-fe1a-4f1c-be2d-6c2ab3ea93bc.jpg)
이인영 의원(오른쪽)이 1994년 4월19일 고려대교정에서 문익환 목사(왼쪽)의주례로 전민련 활동 중 만난 이해학 목사의 딸 도레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S BOX] 80년대 전대협 친북일 수 있지만 종북은 아니다
이인영 의원은 충주고를 졸업할 때 교사가 되려 했다. 그러나 1984년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광주 백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 ‘1987’과 같다. 그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87년 전대협 1기 의장이 됐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주사(주체사상)파’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그는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이다.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사파 배후로 알려진 ‘반미(反美)청년회’에 대해서도 “나는 그 쪽과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몇몇 간부나 라인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대협은 대중조직체입니다. 심지어 비밀활동을 했던 어떤 흐름이 학생운동에 개입할 때 정확하게 스스로 퇴치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전대협 의장할 때는 제가 주인이 되어서 판단했습니다. 2명 중 1명은 6월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총학생회로 할 수 있는데 왜 비밀조직이 따로 있어야 합니까.”
그는 검찰 조사 때 “어쩌면 나는 친북일 수 있겠다”고 말하니까 검사가 자백을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통일을 하려면 연합이든 단결이든 있을 수밖에 없고….그러면 우리가 연북(連北)하고, 친북하고, 이렇게 보이고,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릴 종북(從北)을 만들면 안 된다. 그렇게 말했죠.”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주사(주체사상)파’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그는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이다. 심지어 종북 조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사파 배후로 알려진 ‘반미(反美)청년회’에 대해서도 “나는 그 쪽과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몇몇 간부나 라인이 그런 흐름을 가졌는지 따져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대협은 대중조직체입니다. 심지어 비밀활동을 했던 어떤 흐름이 학생운동에 개입할 때 정확하게 스스로 퇴치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전대협 의장할 때는 제가 주인이 되어서 판단했습니다. 2명 중 1명은 6월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총학생회로 할 수 있는데 왜 비밀조직이 따로 있어야 합니까.”
그는 검찰 조사 때 “어쩌면 나는 친북일 수 있겠다”고 말하니까 검사가 자백을 받았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통일을 하려면 연합이든 단결이든 있을 수밖에 없고….그러면 우리가 연북(連北)하고, 친북하고, 이렇게 보이고,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릴 종북(從北)을 만들면 안 된다. 그렇게 말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