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방카 트럼프와 ‘비빔밥 만찬’을 했다. 서로 다른 재료를 골고루 섞어 먹는 비빔밥은 이제 화합을 상징하는 단골 메뉴다. 청와대가 만찬 장소로 상춘재를 제공한 것은 정상급 의전의 단면이다. 지금까지 상춘재에서 환대를 받은 외국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방카는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일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이방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청와대가 정상급 예우를 한 것은 적절했다. 문제는 이방카와 25일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조우할 가능성이 있는 북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꺼내 든 김영철 카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첫째는 북·미 대화의 측면이다. 북한이 누구를 대표단으로 보내는지는 펜스 부통령-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간의 회동(지난 10일)이 무산된 이후 비핵화를 위한 북·미 회담의 재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다. 그러나 정찰총국장 출신으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꼽히고 있는 김영철이 한국에 올 경우 미국은 북한이 더 이상 대화 의지가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더욱이 김영철은 2013년 3월 조선중앙TV에 등장해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겨냥해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불바다’란 표현을 입에 올린 적도 있다.
둘째는 대북제재 측면이다. 김영철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31개국의 동시 제재 대상이다. 그런 김영철의 입국을 허용하면서 한국은 또 한 번 제재에 대한 예외를 만들어주게 됐다. 하지만 김영철 카드로 북한이 노린 것이 제재 흔들기였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이방카가 방한한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의 대북 추가제재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석유 등 금수품목을 밀수하는 북한 선박에 대해 해상 차단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셋째는 남·남 갈등의 측면이다. 여동생 김여정까지 개막식에 보낸 김정은 위원장이 단순히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영철을 보내기로 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남·남 갈등은 이미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정부와 북측은 “김영철은 우리 땅에 단 한 발자국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자유한국당의 반발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런 세 가지 측면에서의 부정적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김영철 카드를 수용했다면 정부의 판단은 안일했다. 김영철은 정찰총국장 시절의 만행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고 이 땅을 밟아야 할 것이다. 평창에서의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넘어 비핵화와 관련한 전향적 메시지를 내놓는 게 최선이다. 그것이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은 ‘정찰총국장 김영철’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