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가속기' 가 뭐길래…이해찬 “전남 지원”에 충청·강원 '발끈'

방사광가속기, 1조원대 '뜨거운 감자'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7일 앞둔 지난 8일 오전 광주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선거대책위원회가 열린 가운데 이해찬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7일 앞둔 지난 8일 오전 광주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선거대책위원회가 열린 가운데 이해찬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민주당 당직자들과 함께 광주를 찾은 이해찬 대표가 “4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와 ‘E-모빌리티 생태계’를 광주와 전남에 구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방사광가속기를 전남에 유치함으로써 호남을 미래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는 의지를 담은 공약이었다.

 이 대표 발언은 전남도와 전남 나주시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1조 원 규모의 사업은 전국 광역지자체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뜨거운 감자’여서다.

 현재 이 사업에는 충북(청주시)과 전남(나주시), 강원(춘천시), 경북(포항시) 등 4곳이 유치의향서를 냈다. 이중 충북과 전남은 각각 충남, 전북과 손을 잡고 대대적인 유치전을 선언한 상태다.

 이 대표의 발언이 알려지자 충북도와 강원도 등 경쟁 지역의 여론이 들끓었다. 전국 지자체가 사활을 건 사업에 여당 대표가 특정 지역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돼서다. 해당 발언은 4·15 총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 사이에선 쟁점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광주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 선거대책위원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광주 서구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동 선거대책위원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충북 등 여·야 후보들 연일 공방

 충북과 강원·호남 등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을 놓고 여·야가 연일 공방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은 “단순 해프닝에 불과하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미래통합당 등은 “충북을 홀대하는 처사”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래통합당 충북도당은 지난 8일 이 대표의 발언 직후 곧바로 항의자료를 냈다. 이들은 “방사광가속기는 여야가 공약으로 내걸고 치열하게 유치경쟁 중인 사업”이라며 “민감한 선거철에 특정 지역에 가서 유치를 약속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날뿐더러 충북도민을 무시하는 한심한 처사”라고 했다.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나선 강원도와 춘천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지자체들은 이날 이 대표의 ‘방사광가속기 전남 유치 약속’ 발언을 정정할 것을 민주당 강원도당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이 대표 비서실은 긴급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 대표의 발언을 수정했다. 비서실은 “방사광가속기 유치와 E-모빌리티 신산업 생태계를 광주와 전남에 구축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방사광가속기 유치에 (충청북도와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겠다)는 괄호 부분이 생략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시종 충북지사가 지난달 31일 e-브리핑을 통해 "충북의 최대 핵심 현안인 '방사광가속기 청주 오창 유치'에 164만 도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시종 충북지사가 지난달 31일 e-브리핑을 통해 "충북의 최대 핵심 현안인 '방사광가속기 청주 오창 유치'에 164만 도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과 공정한 경쟁 보장 생략" 해명 

 하지만 이 대표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충북 지역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당 대표가 지자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표 한 장 더 얻겠다고 섣불리 발표했다가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호남에서도 야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명진 민생당 광주 서구갑 후보는 지난 9일 “방사광가속기 전남 유치 등 광주·전남 숙원 사업에 대해 뭐든 다해 줄 것처럼 말 잔치를 벌이고도 공약한 지 불과 반나절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발언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할 때 생기는 밝은 빛을 이용해 물질이나 현상을 관찰·분석하는 장치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태양광보다 100경(京) 배나 밝은 빛을 이용해 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의 물질도 관찰·분석할 수 있다. 100경 배는 100억 배에 1억 배를 곱한 수치다.

경북 포항시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1층에 전시된 가속기연구소 일대의 모형. 둥근 모양이 3세대 가속기, 길게 뻗은 모양이 길이 1.1㎞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중앙포토]

경북 포항시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1층에 전시된 가속기연구소 일대의 모형. 둥근 모양이 3세대 가속기, 길게 뻗은 모양이 길이 1.1㎞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중앙포토]

햇빛보다 100경배 밝은 슈퍼 현미경 

 방사광은 병원의 X-ray(엑스레이) 촬영이나 공항의 화물 검색대에 활용되는 것을 비롯해 우리 생활주변에 폭넓게 퍼져 있다. 정부는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첨단산업을 이끌 미래 유망사업이라는 판단 아래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백질 및 바이러스 구조·분석이나 정밀 나노소자 분석 등 바이오·헬스·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에 따르면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할 경우 6조7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 내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조40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13만7000명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8일까지 지자체 4곳의 유치의향서를 접수한 데 이어 5월 7일 현장확인과 최종평가 등을 거쳐 5월 중에 사업부지를 선정한다.

청주·무안·춘천=최종권·최경호·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