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마을’ 전남 해남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문정훈(31)씨는 해남을 유명하게 만든 '출산장려금' 제도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해남 토박이 문씨는 “현금을 쥐여주면 당장은 좋지만, 문제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라며 “병원이나 학교가 목포나 광주 등 인근 대도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젊은 신혼부부가 살기 어려워 결국 지원금만 받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남은 한때 전국 합계출산율 1위 도시였다. 아이를 낳으면 3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산장려금 정책을 펼쳤고, 실제로 2012년 2.47명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7년 연속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부터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더니, 지난해 기준으로 1.04명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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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오후 7시 전남 해남의 번화가 골목. 한창 저녁 시간인데도 사람 없이 조용했다. 해남=나상현 기자
'해남의 역설'은 인구 감소에 따라 쪼그라드는 경제, 일명 '슈링코노믹스(shrink+economics·축소 경제)'를 막기 위한 한국의 저출산 대책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보다 당장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부터 붓는, 대증요법의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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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방문한 전남 강진군의 번화가. 군청·은행·터미널이 다 모인 중심지인데도 한산했다. 강진=서지원 기자
하지만 출산장려금은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영암·진안·함평 등 2012년 출산율이 2명을 넘던 지역 대부분이 10년 새 출산율이 반 토막 났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 차원의 출산장려금은 기본적으로 이웃 지역끼리 인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남들이 움직일 때 혼자 멈춰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뛰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난하고 급한 지자체일수록 인프라에 대한 투자 대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출산장려금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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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지자체 출산 지원 정책 정책의 효과 분석 및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장려금 100만원을 지급했을 때 출산율 증가 효과는 0.0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동 1명당 인프라 개선 예산으로 100만원을 썼을 때는 출산율이 3배 이상인 0.098명까지 증가했다.
단기 효과를 노린 현금 지급 대신 인프라 투자, 제도 개선 등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저출산 정책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삶의 질’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현금 정책은 저출산을 만들어낸 원인을 구조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며 “삶의 질을 개선하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실질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해 실질적으로 아빠와 엄마 모두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나갈 수 있도록 바꾸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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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중앙정부 역할론을 강조하는 제언도 나온다. 마강래 교수는 “점점 어려워지는 지방 지자체들의 현실을 중앙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전국 지자체들의 출산 장려 정책을 조율하고 지원해야 효율적인 재원 분배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최슬기 연구원도 “중앙정부가 나서서 지자체의 무분별한 현금성 지원 정책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출산장려금을 지적받은 해남은 현금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출산장려금을 아예 폐지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더 올리지 않는 대신 소아과 확대 등 복지 인프라 강화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난 8월엔 외부에서 소아과 전문의를 어렵사리 모셔오는데 성공해 소아과 야간 연장 진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미경 해남군 보건소장은 “출산장려금만으로 인구를 늘릴 수 없다는 공감대가 생겼다”며 “(현금 지원이 적으면) 단기적으로 출산장려금을 많이 주는 다른 지자체로 인구가 빠져나갈 수 있지만, 경쟁을 멈추고 인프라 구축에 힘쓰는 것이 장기적인 해법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