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저격수' 된 박지원…DJ 땐 함께 대취한 사이였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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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기자 사진 허진 기자
지난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뵈니까 너무 좋습니다.”(한덕수 국무총리)
“(총리 공관이 있는) 삼청동으로 한 번 초청하세요.”(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실 저는 (박 의원이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장을 할 때) 국정원장실에서 한 번 부를 줄 알았습니다.”(한 총리)

지난 9월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선 난데없는 ‘브로맨스’(남성 간의 깊은 우정) 장면이 펼쳐졌다. 김대중(DJ) 정부 당시 실세 중의 실세였던 박 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한 총리가 20년도 훨씬 지난 일을 꺼내며 서로를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날도 두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관해 말을 주고받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싸우라고 할 때 제가 싸우던가요?”(한 총리), “좋은 한덕수가 왜 지금은 나쁜 한덕수에요?”(박 의원)라고 치고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정치권에서 두 사람은 친분이 꽤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나이는 박 의원(82세)이 한 총리(75세)보다 일곱살 많지만 30일 SBS 라디오에 출연한 박 의원은 한 총리를 “친구”로 표현했다. 총리실 관계자도 “두 사람이 부부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그동안 가깝게 지내왔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함께 대취(大醉)한 일도 있었다. DJ 집권 4년차인 2001년 11월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쇄신파가 ‘DJ의 오른팔’로 불리던 박 의원을 집중 공격하자 박 의원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맡은 지 한 달여만에 사퇴했다. 박 의원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 이상주 청와대 비서실장은 환송 만찬을 열었고, 이 자리엔 박 의원의 후임자였던 한덕수 당시 정책기획수석도 참석했다. 두 사람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수차례 돌린 폭탄주 탓에 결국 잔뜩 취한 상태로 자리를 끝냈다고 한다.


이듬해 1월 박 의원이 DJ 정책특보로 복귀할 때 박 의원은 한 총리를 경제수석으로 추천했고, 석 달 뒤 박 의원이 비서실장이 된 뒤로는 실장과 수석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2001년 11월 16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덕수 신임 정책기획수석에게 임명장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1년 11월 16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덕수 신임 정책기획수석에게 임명장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인연이 깊은 사이지만 최근 박 의원은 ‘한덕수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다.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뒤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불거지자 그를 압박했고, 지난 27일 한 총리가 탄핵소추된 뒤에도 계속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은 30일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진행자가 ‘(한 총리가) 왜 임명 안 한 거라고 보시느냐’고 질문하자 “제가 친구로서 인간적인 고뇌가 왜 없었겠느냐”며 “나는 한 총리마저도 윤석열, 김건희, 자기 부인처럼 주술 속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본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한 총리) 부인도 김건희 여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러한 주술 속에서 살지 않으면 그 현명한 한덕수 전 권한대행이 그러한(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판단을 했겠느냐”라고도 했다.

박 의원의 ‘무속 공격’에 총리실은 공식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한 총리가 직무정지되면서 총리실 조직이 한 총리의 입장을 대변하긴 어려운 상황인 탓이다. 다만, 내부적으론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가까운 사이라면 가까운 사이인데, 저렇게까지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씁쓸해했다.

정치권에선 과거 ‘민주당 사람’으로 분류되던 한 총리가 최근 민주당과 극한 대립을 이어가자 박 의원이 총대를 멨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한 총리는 민주당의 공적인데, 박 의원으로선 선명성을 보여줄 기회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