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당시 유인태 정무수석도 사전엔 전혀 몰랐다. 유 전 수석은 “‘내년에 당연히 총리는 저쪽(보수)으로 갈 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노 대통령은 ‘(내각 구성권이 야당에 넘어가면) 여야가 한 자리에서 난상토론을 벌이는 일도 많을 텐데, 거기서 나온 결론이 지금처럼 원내대표 협상보다는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더라”고 기억했다.
선거법 개정이 개헌보다 중요한가.
“대통령 권한을 의회와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 다만 갑자기 넘어가기엔 무리가 따른다. 현재 국회 신뢰도가 바닥 아니냐. 다당제가 되면 연정을 하지 않고 단독 과반 지지를 얻을 정당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서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조정과 타협이 살아나는 여건이 마련된다.”
다당제가 혼란을 가중할 거라는 주장도 있다.
“6공화국 들어와 의회가 가장 빛났던 시기가 1988~1989년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4당 체제였다. 지역구도로 그렇게 된 거고 3당 합당으로 끝났지만, 어찌 됐든 그 시기에 타협과 조정이 활발해 국회에선 만장일치 통과가 많았다. 가까이는 안철수당(국민의당)이 40석 가까이(38석)할 때 그나마 국회 기능이 활성화됐었다. 합의 안 하고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2003년 선거제 개혁은 왜 실패했나.
“홍사덕 선배(한나라당 원내대표)하고는 얘기가 잘 됐지만, 그 당 주인은 TK 아닌가. 영남 의원들이 극렬 저항했다. 그걸 좀 누그러뜨리려고 도농 복합 선거구(농촌은 소선거구, 도시는 중선거구)도 제안했지만 잘 안 됐다.”
가장 나빴던 선거제는.
“지금이다. 연동형 비례제를 위성정당으로 무력화한 체제.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가지고 해도 너무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로 5.5%포인트 이기고도 71석을 더 가져간 결과다. 다원성이 보장되고 어느 정도 민심 그대로의 국회가 돼야 한다. 양당제 하에서는 두 당이 지금처럼 팬덤 정치니 뭐니 강경 세력에 휘둘리다 결국 정치가 실종된다.”
어떤 제도가 바람직한가.
“다당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여러가지가 있다. 비례대표를 광역시도별로 뽑고,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김종민 의원 안 같은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서울이 50석이면 25명은 소선거구로, 25명은 서울 지역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거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누되, 사람은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선거제 개편이 개헌에 앞서야 하나.
“함께 가야 된다.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후보들에게 대선 공약을 하게 하고, 선거법과 분권형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되 이행시기를 달리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새 선거제는 2028년 총선에 처음 적용하고, 새 대통령제는 올해 조기대선이 성사된다면 2030년 대선부터 적용하는 거다. 조기대선 당선이 유력한 사람도 임기가 보장되니까 동의하기 쉽다.”
지금이 선거제 개편과 개헌 논의 적기인가
“혹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러는 게 역설적으로 분권 논의를 앞당기게 됐다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어쨌든 저렇게 큰 사고를 친 마당에 탄핵이 인용돼야 논의를 시작하든 할 수 있을 거다. 지난 24일 한덕수 총리를 찾아갔었다. 민주당 원로들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특검법을 재의요구하더라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하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평소 합리적인 친구고 해서 대화가 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재판관 임명 권한이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있느냐에 다른 의견들이 있다는 둥 해서 말문이 막혔다.”
최상목 부총리는 ‘대행의 대행은 더 권한이 제한된다’고 했는데
“정치 불안 때문에 경제가 보통 위기가 아니라고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최 대행 아닌가. 은퇴했다가 다시 발탁된 한 총리와는 입장도 좀 다를 테고, 할 때 돼서 부총리 하는 사람이니 윤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헌재·대법원은 물론 상당수 전문가도 임명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니, 최 대행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유 전 수석은 지난 9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계엄 가능성을 주장하는 민주당 인사들을 향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했었다. 소회를 묻자 그는 “계엄 주역인 김용현 전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고 국민이나 군이 따라 주겠냐’고 하지 않았느냐”며 “서슬 퍼런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서던 검사 윤석열이 어쩌다 저렇게 빠른 시간에 망가졌는지가 미스터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