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명 '빈소' 된 무안공항…'경찰 내 응급실', 유족 심리 안정 돕는다

3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사고 여객기와 충돌로 부서진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보인다. 뉴스1

3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사고 여객기와 충돌로 부서진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보인다. 뉴스1

케어요원 7명, 심리적 응급 처치 역할  

지난 30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내 격납고(임시 안치소). A씨(60대)는 시커먼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자 오열했다. 신장 질환이 있는 A씨는 이미 대합실에 있을 때부터 몸을 가누지 못했다고 한다.

임시 안치소까지 A씨를 부축하며 동행한 전남경찰청 피해자보호팀 한 직원은 ‘긴급 상황’이라는 피해자보호심리전문요원의 조언을 바탕으로 즉시 현장 검시팀에 “순서를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순번대로라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A씨는 애초 일정보다 일찍 신원 확인을 마친 뒤 무사히 혈액 투석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은 유족의 울음이 끊이지 않는 거대한 빈소가 됐다. 신원 확인을 위해 격납고에 임시로 안치된 시신을 보러 갈 때 유족의 심리적 동요가 제일 크다고 한다. 사고 당시 폭발·화재로 시신이 심각히 훼손됐기 때문이다.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별관(관리동) 3층에 설치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재난피해자통합지원센터에서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경찰·전남도·제주항공 등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다. 사진 전남경찰청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별관(관리동) 3층에 설치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재난피해자통합지원센터에서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경찰·전남도·제주항공 등 유관 기관 관계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다.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경찰청, 피해자보호팀 50명 현장 배치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경찰·전남도·제주항공 등은 사고가 난 지난 29일 공항 별관(관리동) 3층에 재난피해자통합지원센터를 꾸려 희생자 유족을 돕고 있다. 이 중 ‘경찰 내 응급대’로 불리는 피해자보호심리전문팀이 주목받고 있다.  

하루아침에 피붙이를 잃은 슬픔에 패닉 상태에 빠진 희생자 유족 곁에서 '심리적 응급 처치(위기 개입 상담)'를 하는 역할이다. 전남경찰청은 사고 첫날부터 여성청소년과 중심으로 피해자보호심리전문요원 7명을 포함해 피해자보호팀 직원 50명을 현장에 배치해 유족 보호·지원에 힘쓰고 있다.  


경찰은 2009년 강력범죄 피해자 심리 상담 치료 등을 위해 피해자보호심리전문요원 제도를 도입했다. 일명 CARE(Crisis-intervention Assistance REsponse)팀으로, 이들을 ‘케어요원’이라 부른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발생 사흘째인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이 침통해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발생 사흘째인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이 침통해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범죄·재난 피해자 심리 치료”

해마다 지방경찰청별로 심리학 학사 이상 경력자를 뽑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200명을 채용했다. 범죄 피해자 트라우마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예방하고 지원 방안을 찾는 게 주 업무지만, 재난 현장에도 투입된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가 대표적이다.

김종신 전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케어요원은 경찰이 기존에 주력하던 범죄 예방이나 범인 검거를 넘어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일상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심리 상담부터 정부·지자체 등의 경제적 지원을 연계해 준다”며 “전문성은 물론 현장 대응 경험도 풍부해 재난 현장에서도 케어요원을 먼저 찾는다”고 했다. 

2020년 5월 케어요원이 된 전남경찰청 여성청소년과 하지은(32·여) 경사도 무안 사고 희생자 유족을 돕고 있다. 심리학 석사인 하 경사는 경찰 제복을 입기 전 청소년 지원 기관에서 4년간 심리 삼당을 했다고 한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착륙 사고 발생 사흘째인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제주항공 관계자들이 유가족에게 사죄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무안공항 제주항공 착륙 사고 발생 사흘째인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제주항공 관계자들이 유가족에게 사죄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하지은 경사 “트라우마 최소화 조언”

하 경사는 “(전남경찰청 소속) 케어요원 7명이 물리적으로 모든 시신 확인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에 유족의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격렬한 감정적 충격)를 최소화할 수 있게 동행한 피해자보호팀 동료가 케어요원에게 수시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호흡법이나 상담 기법 등에 대해 조언을 구하며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울거나 극심한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는 유족도 있지만, 일부는 외려 담담해 보인다”며 “사람마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협의회 박한신 대표가 유가족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협의회 박한신 대표가 유가족 성명서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

“희생자 유족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희생자 확인과 시신 인계가 늦어지면서 유족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전날 박한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브리핑을 열고 “정부가 약속한 것과 달리 피해자 유해가 격납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와 관련, 하 경사는 “보통 형사 사건이면 수사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유가족이면서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하는 범죄 피해자는 심리적 압박이 크다”며 “이번 사고도 시신 인도나 검시·감식 등 신원 확인 과정을 궁금해하는 유족이 많은데, 케어요원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내하는 식으로 유족을 안심시키고 불확실성을 줄여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