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묘기 같았던 100년, 그래도 서커스는 계속될 것"

한국 마지막 서커스단 ‘동춘서커스단’ 박세환 단장

박세환 동춘서커스 단장이 설날인 지난달 29일 대부도 상설극장에서 쌍철봉 묘기를 배경으로 “동춘은 계속된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세환 동춘서커스 단장이 설날인 지난달 29일 대부도 상설극장에서 쌍철봉 묘기를 배경으로 “동춘은 계속된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시화방조제에서부터 차는 줄 서서 대부도로 들어갔고,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다시 줄을 섰다. 설날. “명절에 귀한 시간을 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은 곳은 ‘동춘서커스’다.

설 차례를 지냈거나 안 지냈거나, 사람들은 바삐 달려와 서커스를 즐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부산과 거제에서, 가깝게는 방조제 바로 건너 시흥에서도 왔다. 400명을 헤아렸다.

동춘서커스는 우리나라 단 하나 남은 서커스단.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더는 생기지 않는다면 ‘마지막’이란 수식도 가능하다. 미국 작가 배리 롱이어의 공상과학소설 『서커스 월드』가 지구 마지막 서커스단의 다른 행성 불시착으로 시작한다면 박세환(81) 단장은 한국 마지막 서커스단의 연착륙을 내내 시도하고 있다. 현실이다. 소설이 아니라.

막이 올랐다. 꿀꺽.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첫 공연인 ‘쌍철봉’을 오르는 남자 여덟 명의 몸짓은 기하학처럼 난해했고 공상과학소설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동춘서커스 자체가 소설 같다. 그래서 박 단장에게 물어봤다.

“태양의 서커스에 못지않은 공연 자부”


100주년을 맞아 감회가 남다를 텐데요.
“서커스는 스포츠입니다. 하나의 스포츠 종목이 한국에 들어와 100년이 됐다는 건 잔칫날이 틀림없습니다.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풍파가 심했어요.”
 

서커스가 스포츠입니까?
“네. 체조와 발레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기 수직의 긴 철봉 두 개를 오르내리는 단원들을 보십시오. 교육과 훈련이 철저히 반복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김연아가 어릴 때 피겨를 시작했듯 서커스도 마찬가지입니다. 10~15세에 배워야 몸에 박히듯 기량이 나옵니다. 몸무게를 60㎏으로 조절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동양인들이 잘합니다. 스포츠 중에 가장 위험하기도 하고요.”
 

지난달 29일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천에 매달려 공중에서 춤추는 ‘에어리얼 로맨스’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9일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천에 매달려 공중에서 춤추는 ‘에어리얼 로맨스’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말 그대로 체득(體得)이다. 어느새 공연은 ‘공중 실크’로 옮겼다. 지상 8m에서 여성 곡예사가 긴 천에 온몸을 맡긴 채 거꾸로 매달렸다. 순간 허리에 말린 천을 풀었다. 여자는 사납게 떨어졌다. 앗! 으악! 객석에서 저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벅지에 말린 천은 급제동을 걸어줬고 여자는 지상에 안착했다.

편안하게만 오지는 않았군요. 풍파도 끊이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저희를 비껴갔겠습니까. 2009년 금융위기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당시엔 신종 플루까지 덮쳤습니다. 사람들이 도무지 찾아오질 않아 정부에 구제 요청을 했습니다. 폐단 결정을 하고 그해 연말에 고별 공연까지 준비했죠. 그래도 사람이 오질 않더군요. 그런데 공연 1시간 전. 삼삼오오 모여 200명, 300명, 그리고 800명이 됐습니다. 그날 누가 그러더군요. ‘어디 가서 큰돈 들여 놀 필요 없다. 동춘에서는 2만원만 내면 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동춘이 안 망한다’고요. 겨우 살아났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박 단장은 ‘정말’ 풍파 얘기도 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 동춘서커스는 전남 광양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태풍은 모든 걸 날려 보냈다. 인근의 경남 진주시가 도와줘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박 단장은 거듭 “고맙다”고 했다.

공연은 저글링으로 넘어갔다. 남자들이 인간탑을 쌓고 모자를 주고받았다. 여자들은 농구공을 돌렸고 누워서 긴 골대를 발재간으로 조절해 득점포를 쏘았다. 현란한 묘기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탄성과 웃음이 전염됐다.

동춘의 뜻은 뭔가요.
“동춘(東春)은 이 서커스단을 만든 박동수 선생의 호입니다. ‘봄은 동쪽에서 온다’는 뜻도 되죠.”
 

지난달 29일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우산 9개는 발바닥, 2개는 양손으로 동시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9일 동춘서커스 단원들이 우산 9개는 발바닥, 2개는 양손으로 동시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커스는 원형(circle)을 뜻하는 라틴어 키르쿠스(circus)에서 유래했다. 1913년 일본 고사쿠라 서커스단이 부산에 들어오면서 서커스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우리나라 최초로 목포에서 창설됐다.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박동수 선생이 독립해 30여 명의 조선인을 모아 만들었다. 1930년대 한반도에선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커스단 10여 개를 포함해 30여 개의 서커스단이 전국을 누볐다. 박 단장에게도 운명처럼 동춘서커스가 찾아왔다.

입단 계기가 있습니까.
“제 고향 경주에 동춘서커스가 왔어요. 고1 때였습니다. 까만 양복에 하얀 머플러를 두른 사회자에게 완전히 홀렸죠. 잘 생겼고, 지금처럼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춤도 잘 췄고 악기도 잘 다뤘습니다. 다재다능, 탤런트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싶었습니다. 1963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원에 있던 서커스단을 찾아갔어요.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런데 경주에선 내로라하던 노래 실력도 동춘서커스에선 빛이 바랬습니다. 주변에 더 잘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저는 돈도 없었고 연습할 곳도 없었죠.”
 

누가 동춘에 있었습니까.
“이거 일부 당사자들은 이름을 빼달라고 연락이 올지도 몰라요(웃음). 그때 코미디언 남성남·서영춘·백금녀, 탤런트 장항선 등이 있었죠.”
 
배우 허장강, 코미디언 남철·배삼룡·서영춘·이주일, 작곡가 이봉조, 가수 정훈희·하춘화 등도 동춘을 거쳐 갔다. 박 단장은 “동춘에 있던 사람들은 스타가 됐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이끈 게 서커스”라며 “연극 1시간, 쇼 1시간, 서커스 1시간, 여기에 창(唱)까지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지난 설 연휴 동춘서커스를 보기 위해 대부도 상설극장에 줄 서서 입장하는 관객들. 김홍준 기자

지난 설 연휴 동춘서커스를 보기 위해 대부도 상설극장에 줄 서서 입장하는 관객들. 김홍준 기자

 

1970년대 이후엔 서커스가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아이러니죠. 우리 동춘의 인물들이 대거 TV로 갔는데, 그래도 주연급이라면 오히려 벌이와 대접이 좋았기 때문에 서커스에 남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사실 저는 MBC 탤런트 2기로 합격했어요. 그런데 방송사에 가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동춘을 나가겠습니까. 1972년부터 방영한 ‘여로’는 서커스에 치명타였어요. 서커스를 보러 와야 하는데 사람들이 TV만 찾았습니다. TV가 먼저 태클을 걸어왔고, 이후 레저가 달려들었어요. 198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살만해지면서 등산과 에어로빅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서커스를 잘 보지 않게 된 거죠.”
 
제대로 된 놀이가 없던 시절을 풍미했던 서커스는 이후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춘서커스는 1987년 태풍 셀마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파산 상태에 빠졌다.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잠시 다른 일(그는 “외도”라고 표현했다)을 하고 있던 박 단장은 “이거, 무조건 된다”며 동춘을 인수했다. 21세기까지 함께했던 한국곡예예술단과 서울아트서커스는 2008년 폐업했고 동춘서커스 홀로 남았다.

대부도에 공연장, 스태프까지 단원 40명
공연 중 피에로가 등장했다. ‘여기를 잘 보라’고 손짓을 하더니 책 속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광대는 사람들에게 던지려다 급히 거둬들였다. 대신 풍선을 나눠줬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은 안달이 났다.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피에로의 역할이다. “공연의 완급 조절을 위한 등장 같다”고 하자 박 단장은 “그게 연출의 위력”이라고 답했다.

‘명불허전, 명품공연’을 내세우시더군요.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 못지않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태양의 서커스에 도전’이란 표현도 쓴 거고요. 제작비·무대시설·의상, 이런 것에서 밀려도 연출에선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2만5000원이면 볼 수 있으니 10만원짜리 태양의 서커스에 비해 가성비도 뛰어납니다.”
 

강릉단오제도 꼬박 참석하셨더라고요.
“30년 넘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는 사람이 계속 옵니다. 타깃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 아니고, 1년이 지나면 궁금해서 또 오는 겁니다. 재밌거든요.”
 

대부도에는 어떻게 자리를 마련했나요.
“2011년 안산시에서 찾아왔어요. 상생하자고요. 차들이 오가기만 하고 사람은 머무르지 않는 대부도를 살리자고요. 16m 빅탑 텐트를 치니 주민들이 반발했어요. 그런데 이젠 주변 식당도, 숙박업체도 좋아합니다. 제가 관객들이 오면 골고루 소개해 주거든요.”
동춘서커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생사륜'. 생과 사를 가르는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곡예사는 바퀴 안과 밖에서 뛰어다니며 묘기를 선보인다. 김홍준 기자

동춘서커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생사륜'. 생과 사를 가르는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곡예사는 바퀴 안과 밖에서 뛰어다니며 묘기를 선보인다. 김홍준 기자

 
100년. 한때 300명에 달했던 동춘은 지금은 곡예사 28명에 스태프까지 합쳐도 40명이다. 곡예사도 대부분 중국인. ‘중국기예단’이라고 새겨진 옷을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박 단장은 “한국인 후계자가 없다”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2030년까지’ ‘2040년까지’ ‘2060년까지’ 시한을 정해 놓은 각각의 포스터가 있던데요.
“반어법이죠. 제각각인 건 결국 공연 시한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동춘서커스는 쭉 계속됩니다. 돌고 돌듯 아슬아슬한 묘기 같지만요. 대부도 안, 저기 2㎞ 밖에 서커스 아카데미와 전용극장 부지도 마련해 놨고요. 한 해 15만 명이 찾아옵니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세계죠. 관객 80%가 2030세대라는 게 방증입니다. 사랑과 성원이 지속된다면 충분히 계속할 수 있습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생사륜’이었다. 삶과 죽음이 걸린 수레바퀴라는 뜻. 곡예사는 빙빙 도는 거대한 바퀴 안과 밖에서 아찔하게 뛰었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홀로 남아 아슬아슬한 동춘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