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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로 한국에 돌풍을 일으켰던 기시미 이치로 작가. 『명상록』을 풀어낸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으로 돌아왔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고민은 비슷하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역시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행복을 숙고했다. 그 결과인『명상록』을 2025년의 맥락으로 풀어낸 이가 있으니, 한국에서만 250만 판매고를 올렸던 『미움 받을 용기』의 주인공,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郎)다. 그가 아우렐리우스를 소환하며 붙인 책의 제목은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위즈덤하우스). 한국어 공부가 매일의 루틴이라는 기시미 작가는 책에서 김연수 작가와 한국 드라마를 예로 다루며 친근함을 더한다. 탄핵 정국의 분노로 뜨거운 이 겨울, 그가 권하는 명상의 메시지는 울림이 크다.
기시미 작가는 전도유망한 젊은 철학자였던 대학원생 시절, 어머니 간병으로 학업을 잠시 중단하면서 "인생에 깔려있던 길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 그에게 힘이 돼준 책이 『명상록』이었다고 한다. 이후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이 책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중앙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회복한) 지금은 죽을 뻔 했다는 것,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려고 한다"며 "현실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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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신간 표지.
한국에 관심이 많은데, 정국에 대한 단상이 궁금하다.
"계엄령 선포에 놀랐지만 시민이 즉시 봉기하고 분노가 에너지로 전환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걸 보며 '이게 민주주의다'라고 느꼈다. 분노에도 종류가 있다. 개인 간의 총동적이고 감정적 분노는 무익하지만 사회적 불공정에 대해선 공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한국의 갈등 상황을 두고 뭐라고 할까.
"조심스럽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할 거 같다.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무지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며, 나 자신이라고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보장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분노는 사라질 거라고 말이다. 그에 대한 분노는 앞서 말한 공분과는 다른 것이다. 불의를 용서해서는 안 되지만, 중요한 건 누가 옳고 그른지 밝히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만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찬반으로 갈려 서로를 탓하는 데 몰입할 것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숙론을 해야 할 때라는 제언으로 들렸다. 기시미 작가가 이번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감정과 마주하는 방법이다. "화를 내봤자 쓸데없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념할 줄 안다는 것" 등, 절제와 자성의 구절이 독자를 만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황제.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0/edcb77ab-1bc8-4dc6-ba3f-f4789b4828d1.jpg)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황제. [중앙포토]
어머니 병간호를 하며 『명상록』을 탐독한 이유는.
"어머니 병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고민했다. 마치 레일이 사라진 기차같았다. (철학) 연구자로 평생 살려고 했었는데 그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희망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돼도, 지금까지의 삶이 헛되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단념' '포기'라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뤄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잇다면 다른 것을 단념해야 한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이것은 단념하지만 이것은 하고야 말겠다는 적극적 결심이 '단념'이다. 일종의 결단이 깃든 것이다. 이런 결단을 내리기 위해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심근경색 당시 심정은.
"쉰 살에 심근경색을 겪었는데, 이는 흔히 불행한 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병에 걸렸다고 반드시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다. 병환뿐 아니라 불행으로 여겨지는 일이 닥쳤을 때,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다. 하지만 진짜로 그럴까. 이게 정말로 불행한 일일까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죽을 뻔한 경험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생각이 틀리면, 실수라면 어떻게 하나.
"시험을 치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해서 시험 자체를 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틀리지 않으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 수가 없다. 시험을 봤다면 합격했을텐데라는 가능성 속에서만 산다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불합격을 해도, 실수를 해도,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운이 좋아 쉽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그 노력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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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작가.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제공
한국어 공부는.
"한국어 책을 읽지 않는 날이 없다. 김연수ㆍ김애란 작가도 좋아하고, 한강 작가의『희랍어 시간』도 흥미롭게 읽었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고민하는 것, 그게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한ㆍ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데.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을 인종이나 언어를 넘어 이성을 공유하는 동료로 봤던 코즈모폴리탄(세계인)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잘못은 모두, 이성을 따르지 않은 인간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수많은 불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로 정치인들로 모든 일본 국민은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국인이지만, 이성을 공유한 동료로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