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협 대화 물꼬 텄지만…“의협 내부 입장부터 정리돼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에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에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과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번 의정 갈등 국면에서 이뤄진 첫 3자 회동으로, 물꼬를 튼 의정 대화가 사태 해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1일 정부·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 김택우 의협 회장은 전날(10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회동은 배석자 없이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번 회동은 앞서 의협이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의료 정상화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달라”고 공식 요청하면서 마련됐다. 의협 관계자는 “(브리핑 이후) 정부 측에서 대화 요청이 있었다”며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 마련도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이주호 부총리와 김택우 회장이 비공개 회동을 한 바 있지만, 조규홍 장관까지 3명이 마주 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날 대화에서 뚜렷한 합의가 이뤄진 부분은 없었다. 앞서 의협은 정부·국회에 논의 테이블을 요청하면서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등 행정명령 사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중단 및 의료개혁 과제 원점 재논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3058명) 동결 확정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이 중 가장 시급한 사항인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 확정에 대해 의협 관계자는 “교육부 장관이 (동결하겠다고) 확답을 준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려면 각 대학은 이달 30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원점 동결을 약속한 교육부는 다음주까지 의대생의 수업 참여율을 지켜본 뒤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의협 관계자는 “(전원 복귀와 같은) 전제조건을 정부가 자꾸 달고 있는데, 그런 게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김택우(왼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공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김택우(왼쪽)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전공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번 3자 회동으로 그간 별다른 진전이 없던 의정 대화에 물꼬는 트였지만, 실질적인 사태 해결로 이어지려면 의협 자체 노선부터 정리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의료계 안팎에선 나온다. 그간 의협은 공식 입장과 별개로 전공의 대표인 박단 부회장의 ‘강경’ 발언이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오면서 집행부의 정리된 입장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복귀 의대생에 대해 개인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협 공식 브리핑과 달리, 박 부회장은 “팔 한 짝 내놓을 각오도 없다”고 비난한 게 대표적이다. 지금도 의협은 정부와 대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오는 13일 전국대표자대회, 20일 전국의사궐기대회를 통해 ‘실력행사’에도 그대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협이 급해지니 뭐라도 하려고 나서는 모습인데, 요구를 보면 여전히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한 정책을 모두 없애라는 식”이라며 “그러면서 집회도 그대로 예고하고 있는데 어떻게 신뢰를 갖고 대화에 응하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역시 의협의 대화 제안에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한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의협은 의료인력수급추계위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료계 측 의견을 대폭 반영한 안에도 반대로만 일관했다. 의협을 향한 인식이 좋을 수가 없다”며 “지금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 백지화 등을 똑같이 외치고 있으니 다들 큰 관심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의료계 내에서도 강경파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한 지역 의과대학 교수는 “투쟁의 목표가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면, 이제는 비현실적인 요구는 내려놓고 협상을 통해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며 “사태 해결을 바라는 전공의·의대생이 많다는 것을 의협 집행부가 인지하고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3자 회동 사실에 대해 박단 부회장이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박단 부회장이 대안 없이 반대와 투쟁만 외치는데 대해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공의·의대생 사이에서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 논의 과정에서 배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