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개다.

학교에 가선 3-4학년 반에 전래동화 이상한 연적(아동문학집)을 읽어 듣겨주었다.
구휼사업은 어제로써 꼭 한 달을 계속하였다. 그동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해 나온 직원들의 끈기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닐는지 모르나 오늘날 모든 조선사람이 이 사람들처럼 열성과 끈기를 가진다면 조선의 새 건설은 잘 되어가리라고 믿는 바이다.
오늘부터 주먹밥을 해주기로 하고 밥 짓는 일과 주먹밥 만드는 일은 모두 여자 사무원들의 수고를 빌리기로 하다. 또 한 가지 난점은 봉양역에서 워낙 정차 시간도 적고 또 붐비어서 과연 시장한 전재자(戰災者)가 누군지 식별해서 나눠주기 힘들므로.

전재 귀환동포를 위하여
주먹밥을 준비하였사오니
이재동포가 차창에서 받을 수 있도록
이 종이쪽을 받으신 분이
차내에 두루 알려주시옵소서”
하는 삐라를 써서 구학역에 갖다 승객들에게 나눠주기로 하였다. 이걸 부탁하러 두 시 차로 구학엘 갔더니 역장은 상경 부재중이고 대리로 일보는 사람이 쾌히 맡아주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구학공원엘 갔더니 만산홍엽 속에 폭포의 흰 비말이 조영(照映)하여 소조한 중에도 아늑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혼자 거닐기 멋쩍고 해서 곧 내려와 버리었다.
이승만 박사께서 이 달 16일에 귀국하시었다는 신문을 보았다.
10월 23일 개다.

아침은 무쓰 무네미쓰(陸奥宗光)의 〈건건록(蹇蹇錄)〉을 기초로 하고 일청전쟁의 발화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해설 : 메이지 초기 사상가-정치가였던 무쓰 무네미쓰(1844-1897)가 외무대신으로 재직하며 청일전쟁 상황을 논한 〈건건록〉은 비밀문서를 많이 이용한 글이라서 1929년에야 공개되었다.]
오후엔 비루박달 가서 김장거리 부탁하고 윤 학자님을 찾아뵙다.
10월 24일 개다. (9. 19)

조합장 환갑이라고 해서 그 집에 가서 아침 먹다.
내일 연합회에서 회의가 있다기 유의순 서기를 대행(代行)시키고 조병순(趙炳純), 임달선(林達善) 양씨에게 편지하다.
오후엔 뜻밖에 강경석 군이 내방. 거의 두 해 만에 이제 새 세상이 되어서 그를 맞으니 감개무량하다. 장래의 진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
10월 25일 개다. [된서리 얼음 얼다.]

아침엔 조선 천주교 이야기.
부평의 이병흔(李炳欣) 씨가 와서 백운면 산 계약이 무사히 해결되었다고. 강 군과 함께 구학역 가서 이 씨 일행의 차표 사주고 구학공원을 둘러보다.
낮차로 원주 가서 내일 강의 보고 서울까지 다녀오렸더니 고단하기도 하고 또 마침 내일이 아내의 생일이기에 여행을 중지하다.
오후엔 김상호 씨가 청년 대표 김광렬(金光烈) 씨를 데리고 와서 기어이 제천 나와서 청년회를 지도해 달라는 부탁. 딱한 노릇이다.
10월 26일 개다. (9. 21) [아내의 생일]

강경석 벗과 현철 군 데리고 미당리를 거쳐 의림지에. 좋은 늦가을 날씨였다.
봉양리에서 미당리를 거쳐 신월리로 해서 제천읍으로 들어가는 길은 옛날의 국도로서 지금도 그 노폭이 상당히 넓은데 노면은 울툭불툭하고 잡초가 자랄 대로 자랐다. 사람도 아무리 훌륭한 바탕을 지니고 또 한때 중요한 일을 했달지라도 항상 마음의 수련을 하지 않으면 그 마음속이 이 폐로와 같이 쑥밭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청년은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도 교문을 나온 후론 다시 정신적인 향상을 희구하지 않고 이기주의적인 사리(私利)의 추구와 퇴폐적인 향락만을 일삼아서 마침내 마음의 황무지와 폐로를 이룩하는 것이 유감스런 현상이라 했더니 강 군이 그건 조선 청년의 잘못이 아니고 일본 교육이 그리 만든 것이라고. 또 너무도 절망적인 사회현상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고 말하였다.


송연환(宋然煥)을 찾아서 기봉이의 송아지를 보았다. 아주 조그만 귀여운 누른 암송아지였다.
이양규(李養圭) 씨를 찾아가서 시조도 듣고 가야금 타는 소리도 들었다. 삶은 밤과 점심 대접을 받고 〈필사본의 원류〉와 〈진견록건(晉見錄乾)〉의 두 권 책을 빌려서 그 집을 나섰다. 또 한 가지 〈풍수학의 곤여상설(坤輿象說)〉이란 책 있음을 보았다.

길에서 강 군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그의 양심적인 마음의 금선(琴線)에 닿으며 내 가슴에 이상스러운 감회가 용솟음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