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강릉 순포해변에서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 장례식'. 상여를 든 박정자 뒤로 그의 지인 150여 명이 만장을 펄럭이며 따라가고 있다. 이지영 기자
25일 강원도 강릉 순포해변에서 연극계 대모, 배우 박정자(83)의 ‘사전 장례식’이 열렸다.

25일 강릉 순포해변에서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 장례식'. 박정자가 춤을 추며 자신의 상여 행렬을 이끌고 있다. 이지영 기자
“그냥 나 편히 보낸다 생각하오 아 인생이 참 덧없어라 이 노래 한자락 들려주고 떠나오 멀지 않았소 그대여 그냥 웃음만 환한 웃음으로…”
이날의 장례식은 배우 유준상이 제작·감독을 맡은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의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이기도 했다. 만물이 초록으로 바뀌는 청명과 곡우 사이의 봄날, 노배우가 웃으며 신나게 죽음을 맞는 장면이다. 영화의 모티브이자 주인공인 박정자가 이 장면에 등장할 문상객들로 실제 지인을 초대해 ‘사전 장례식’으로 꾸민 것이다.

24일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장례식 전야제'. 이지영 기자
전날인 24일 저녁에는 대관령 기슭 강릉 어흘리 카페 ‘정원아버지’에서 ‘장례식 전야제’ 행사가 펼쳐졌다. 미리 보낸 부고장에서 당부한 대로 참석자들은 부의 대신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들고왔다.

24일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장례식 전야제'에서 배우 양희경이 박정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영 기자
연극배우 오지혜가 “1991년 스물네살 때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서 선생님 딸 역을 맡았는데 그 때는 무서워서 선생님 눈도 못 쳐다봤다.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하자 참석자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의 말대로 박정자는 공연계 유명한 ‘호랑이 선생님’이다. 철저하고 엄격한 그의 연기 기준에 못 미치는 후배들에겐 불호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일상의 그는 다정다감한 배려로 기억됐다.

24일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장례식 전야제'에서 배우 강부자가 박정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영 기자

24일 열린 배우 박정자의 '사전장례식 전야제'에서 김동호(오른쪽)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김종규 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박정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영 기자
이틀 간의 장례식 행사를 마친 박정자는 “나의 삶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보게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헤어지는 장면도 꼭 축제처럼 해보고 싶었는데, 웃으면서 보내주고 떠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