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ㆍ현대ㆍ신세계가 삽 뜬다…대기업 공연장의 시대 예고

2027년 완공 예정인 서울 순화동의 삼성생명 서소문빌딩. 두 건물의 가운데를 연결하는 부분이 콘서트홀이다. [사진 삼성생명]

2027년 완공 예정인 서울 순화동의 삼성생명 서소문빌딩. 두 건물의 가운데를 연결하는 부분이 콘서트홀이다. [사진 삼성생명]

삼성생명, 신세계, 현대자동차, 코리안리. 곧 공연장을 짓게 될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의 계획에 따르면 서울의 강북과 강남에 걸쳐 새로운 공연장이 수년내로 문을 연다. 현재 서울의 주요 콘서트홀은 삼각 구도다. 서초동의 예술의전당(1988년 개관),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1978년), 잠실의 롯데콘서트홀(2016년)이 음악 공연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새로 공연장을 더하면 다양한 규모의 무대가 자리잡게 된다.

강남에서 강북까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지을 옛 한전부지.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지을 옛 한전부지. [연합뉴스]

삼성생명은 서울 서소문의 새로운 빌딩에 콘서트홀을 예정하고 있다. 2026년 또는 2027년 개관 예정이다. 콘서트홀이 오피스 건물 두 동을 공중에서 연결하는 형태로 추진된다. 1985년 문을 열었던 호암아트홀의 명맥을 잇는 공연장이다. 호암아트홀은 2017년까지 서울 강북 지역의 주요 클래식 콘서트홀로 꼽혔다. 객석 643석 규모로 소규모 오케스트라 혹은 실내악 편성의 공연을 하기에 알맞았다. 삼성생명 측은 “호암아트홀의 문화 기능을 계승하고 확대 개편한다”고 새로운 콘서트홀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세계는 보다 프라이빗한 공연장을 열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2013년 매입한 서울 장충동의 부지에 연수원을 짓고 있는데, 이 건물 안에 소규모의 공연장을 계획하고 있다. 400~500석 규모로 빠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에 개관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는 서울 삼성동의 한국전력공사 부지에 올리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내의 공연장 계획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2016년에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1800석과 600석의 두 공연장이 포함돼 있었다. 중대형 오케스트라부터 소규모 실내악, 또 뮤지컬 공연에도 알맞은 크기다. 당초 목표는 2026년이었지만 건물 높이ㆍ면적과 관련한 인허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개관 시기는 알 수 없는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구체적 완공 날짜 등을 현재로써 알 수 없지만, 공연장 계획 자체는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광화문 사옥 재건축안에 클래식 전용홀을 포함했다. 1984년 지었던 사옥을 새로 올리면서 지상 2~5층에 클래식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수송공원 쪽으로 자리하는 1004석의 공연장이다. 이런 정비 계획은 지난 2월 종로구청을 통해 주민에게 공개됐고 현재 서울시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공연장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서울 예술의전당(신세계 스퀘어), 서울시향(현대차, 코리안리) 등 공연장과 공연단체의 후원 경험이 있다.


1000석 안팎의 중형이 대부분

콘서트홀 이미지. [중앙포토]

콘서트홀 이미지. [중앙포토]

새로 들어설 공연장은 대부분 중형이다. 공연장은 보통 객석 수를 기준으로 크기를 가늠하는데 세종문화회관(3000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300석), 롯데콘서트홀(2000석) 순서다. 하지만 기업들의 공연장은 신세계 400~500석, 코리안리 1004석, 삼성생명 1200석, 현대차 최대 1800석으로 크지 않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관객을 많이 들여 공연의 수익을 낼 목표는 없다는 뜻이고, 운영ㆍ관리의 편의성을 고려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의 이창주 협회장은 “실내악 공연이나 독주회 무대의 수요를 맞출 수 있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공연장들은 음향과 시설 면에서 새로운 수준을 제시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고양아람누리,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 등의 음향을 컨설팅·설계한 김남돈 건축음향연구소 대표는 “그동안 음악 공연장은 ‘건축적 랜드마크’라는 기이한 역할을 요구받았다”고 비판했다. 외관의 상징성과 화려함을 중시하다 보니 정작 공연장 내부의 소리 울림과 같은 내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이제는 소리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두는 콘서트홀의 시대”라며 “기업 공연장의 일차 목표가 흥행·수익이 아닌 만큼 객석 수를 억지로 늘리는 대신 최적의 소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삼성생명의 콘서트홀 음향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스위스 루체른의 공연장 KKL처럼 공연장의 벽을 여닫아 넓이를 바꾸고 이에 따라 소리의 울림을 조절할 수 있다.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좋은 소리로 들을 수 있는 무대다.

채워 넣을 공연의 성격 분명해야

다만 시설의 급증이 문화의 수준 향상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공연장 계획 단계부터 콘텐트의 내용, 관객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정호 공연 칼럼니스트는 “영국ㆍ일본ㆍ대만 등의 예를 봐도 새로운 공연 시설이 도심 재생과 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적절한 운영 계획과 철학이 없으면 시설은 실패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극장을 채울 콘텐트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문화 시설의 과공급에 대한 각성도 있는 만큼, 새로운 공연장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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