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사업가 겸 방송인 백종원은 지난해 9월 서울 시내에 양조장(백술도가)을 차리고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가 지난 4월부터 본격 시판에 나선 막걸리는 ‘백걸리’다. 유리병에 담아 파는 술은 알코올 도수가 14도로 좀 센 편이다. 합성감미료를 넣지 않고 쌀 본연의 깊은 단맛을 살린 순수 생막걸리로, 걸쭉하면서 진한 맛이 특징이다. 백종원은 “알코올 도수가 높아 부담스러우면 물을 타거나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게 좋다”고 권한다.
![방송인 백종원씨가 양조장 '백술도가'에서 술을 만들고 있다. [사진 백술도가 인스타그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7/03/70b6d8af-c254-48b5-b4e9-147bb460f046.jpg)
방송인 백종원씨가 양조장 '백술도가'에서 술을 만들고 있다. [사진 백술도가 인스타그램]
막걸리 제2전성기, MZ세대가 이끈다
막걸리가 제2전성기를 맞았다. 2000년대 중후반 한때 일본에서 시작한 막걸리 열풍이 한국에까지 분 적이 있다. 하지만 잠깐 대박을 친 뒤 인기가 금방 시들해졌다.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지 않아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2022 K-농산어촌 한마당' 막걸리자조금 부스에 다양한 막걸리가 전시되어 있다. 뉴스1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 3000억원대에 그쳤던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지난해 5000억원을 돌파했다. 국세청에 등록한 탁주 제조면허 건수는 2011년 868건에서 2015년 800건으로 줄었다가 2020년 961건으로 증가했다.

대한제분 브랜드 곰표와 한강주조가 협업해 개발한 ‘표문’ 막걸리. 중앙포토
막걸리의 ‘막’은 ‘마구’ ‘이제 막’의 의미다. ‘걸리’는 ‘거른다’의 뜻으로 ‘거칠고 빠르게 걸러진 술’이다. 막걸리는 예로부터 서민의 술이면서 양반, 나아가 왕의 술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 가운데 철종과 연산군이 유독 즐겼다. 조선 중기 명필인 한석봉의 시조에도 막걸리(박주·薄酒)가 등장한다.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와 노무현이 대표적인 막걸리 마니아였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막사’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1930~1993)은 막걸리에 대해 ‘술이 아니고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그러니 막걸리는 ‘민족의 술’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막걸리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양조장에서 이동중 대표가 막걸리를 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2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양촌양조장을 찾았다.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특유의 나무 향기가 풍겼다. 33㎡규모의 발효실에서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양조장 서까래에는 한자로 ‘昭和’(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지어진 건물이라는 의미다.
양촌양조장 이동중(71) 대표는 식힌 고두밥(꼬들꼬들한 된밥)에 누룩과 물을 섞고 있었다. 막걸리 핵심 제조 과정으로, 발효 전 단계다. 이렇게 섞은 밑술에 덧술(곡물·물·누룩 혼합한 것)을 넣고 일정 기간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양촌양조장은 1923년 이동중씨의 할아버지인 고 이종진씨가 집에서 막걸리를 빚은 게 시초였다. 그러다가 1931년 양조장 건물을 지었다. 이 대표는 3대째 가업 전승자다.

양촌양조장 이동중 대표가 양조장 발효실에서 물에 고두밥과 누룩 등을 섞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양촌양조장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은 전국에 여럿 있다. 충남 당진군 신평양조장은 1933년 설립돼 올해로 89년째 이어지고 있다. 신평양조장도 젊은 층을 겨냥해 막걸리 용기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꿨다.

양촌양조장 서까래에 한자로 ‘昭和’(쇼와) 6년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지어진 건물이라는 의미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순당은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국순당 칠성막사(알코올 도수 5도)’를 선보였다. 이 막걸리는 막걸리 맛과 사이다의 청량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는 서울장수와 함께 ‘장수 막걸리 쉐이크’를 내놨다. 이는 알코올 함량이 1%미만으로, 사실상 술이라고 하긴 어렵다. CU는 가수 나훈아의 유행곡 ‘테스형’을 모티브로 만든 ‘테스형 막걸리’를 판매중이다.
![가수 임창정이 내놓은 막걸리 '임창정미숫가루꿀막걸리'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세븐일레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7/03/eda77570-9fa5-48ef-9f0a-b0a5691e9dc8.jpg)
가수 임창정이 내놓은 막걸리 '임창정미숫가루꿀막걸리'가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고 있다. [사진 세븐일레븐]
CNN "막걸리는 차세대 한류 상품"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액은 1570만2000달러로 전년 대비 27.6%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는 424만800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한 것이다. CNN은 지난 5월 한국 막걸리를 차세대 대표적인 한류 상품으로 꼽았다.
![백종원이 개발한 백걸리. [백술도가 인스타그램]](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7/03/aabba6bd-f894-443e-9fef-329ef19e2bbc.jpg)
백종원이 개발한 백걸리. [백술도가 인스타그램]
지역 특산물을 넣어 차별화한 막걸리도 많다. 경기 포천 더덕, 가평 잣, 공주 밤, 전남 고흥 유자, 경북 문경 오미자, 제주 귤·땅콩 등을 사용한다.
김수미·임청정 등 유명인도 가세
유명인도 막걸리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배우 김수미와 협업해 지난해 11월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 ‘수미 막걸리’를 출시했다. 이 막걸리는 일반 대중 막걸리에 사용되는 쌀과 비교했을 때 단가가 2배 이상 높은 국내산 유기농 멥쌀과 찹쌀을 사용했다. 단맛을 더해주는 인공 감미료를 철저히 배제하고 건강을 강조했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자사 ‘맛 홍보대사’인 배우 김수미와 함께 ‘수미 막걸리’를 출시했다. 가수 임창정도 ‘꿀미숫가루 막걸리’를 출시했다. 이 막걸리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서울=뉴스1) = 2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모델이 ‘설빙 인절미순희’ 막걸리를 선보이고 있다. ‘설빙 인절미순희’ 막걸리는 디저트카페 ‘설빙’과 주류전문기업 ‘보해양조’가 협업해 선보이는 제품으로 설빙의 시그니처 메뉴 인절미빙수의 콩가루와 100% 우리쌀 순희 막걸리의 깔끔함이 잘 어우러져 특유의 달달-고소한 맛을 잘 살린 것이 특징이다. (홈플러스 제공)2022.3.25/뉴스1
한국의 술 역사는 막걸리 역사나 다름없다. 하지만 '막걸리'란 명칭과 제조법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로왕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요례(醪醴)를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탁주를 뜻하는 요(醪)자가 들어있어 이것을 탁주류 기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막걸리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술"

신평양조장에서 체험관광객들이 플라스틱 통에 고두밥과 누룩 등을 담은 뒤 막걸리를 시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막걸리 별칭은 고려 시대 문헌에 나온다. 『동국이상국집』의 백주(白酒), 『도은집』의 탁주(濁酒), 『동문선』의 박주(薄酒) 등이다. 인목대비 어머니가 유배지에서 술지게미를 팔아 연명했다 해서 모주, 농사꾼이 새참으로 먹는다 해서 농주 등으로 불렸다. 조선시대는 집에서 술을 담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확산하면서 양조 기술이 고급화하고 막걸리를 비롯한 술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최근 가격이 오른 느린마을 막걸리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일제강점기에는 전통주도 암흑기를 겪었다. 조선총독부가 세수(稅收) 확대를 목적으로 만든 주세법(1909년)과 주세령(1916년) 등으로 인해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술을 빚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막걸리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한 소주나 청주와 달리 쉽게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민간에서는 밀주(密酒)로 계속 생산됐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쌀이 부족하자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밀가루 막걸리는 쌀막걸리보다 단맛이 덜하고 신맛이 강하다.
막걸리는 지난해 6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정확하게는 ‘막걸리 빚기 문화’가 문화재지정 대상이다.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