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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에서 운영 중인 병원선 경남511호. 사진 경남도
섬마을 유일 ‘왕진의사’ 못 온단 소식에…
2일 경남 통영시 사량면 답포마을의 강연우(62) 이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경남도 병원선이 사량면 순회 진료를 중단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그는 “이젠 여기서 사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겠냐” 등 마을 어르신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1973년 첫 출항 이후, 병원선은 이 섬마을의 유일한 ‘왕진 의사’였기 때문이다.
사량면은 의료 여건이 취약한 도서(島嶼) 지역이다. 뭍에서 뱃길로만 약 1시간이 걸린다. 병원선은 매달 한 번씩 답포마을을 포함한 사량면 11개 마을을 찾아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고혈압·당뇨 등 노년기 만성질환을 달고 사는 어르신들의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해온 셈이다. 실제 이들 섬마을에는 약 720명이 사는데, 이 중 92%가 60세 이상이다. 3명 중 1명(36%)은 보행기를 사용해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80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사량면에는 보건지소가 있어도 섬 주민 대다수는 병원선에 의지해왔다고 한다. 보건지소로 가는 마을버스가 2시간마다 다니는 등 왕복에 최소 4시간은 걸리는 탓이다. 반면, 병원선은 선내뿐 아니라 마을회관이나 자택까지 찾아가는 방문 진료도 해왔다. 65세 이상 고령자에겐 진료비와 약제비도 받지 않았다. 난데없는 병원선 중단 예고에 사량면 섬 주민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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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에서 운영 중인 병원선 순회 진료 서비스를 받는 섬 지역 주민들. 사진 경남도
약국 하나 생겼을 뿐인데…병원선 못 간다, 왜?
덕분에 사량면을 찾은 병원선에선 의료진이 진료·처방·약 조제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의약분업은 ‘약을 처방하는’ 의사와 ‘약을 제공하는’ 약사의 업무를 분할한 제도인데, 예외 지역에서는 의사도 의약품을 직접 조제(調劑)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사량면 보건지소 500m 인근에 작은 약국이 개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통영시는 현행 규정상 예외 지역 지정을 취소했고, 이후 도는 병원선 순회 진료 중단을 예고했다. 단순 진료 외 병원선이 사량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남도 관계자는 “대부분 약을 받으러 오시는데, (약국에서 약을 받도록) 처방도 할 수 없고, 직접 약 조제도 할 수 없다”며 “그간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의 최대 10%밖에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병원선이 가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매번 찾을 때마다 와줘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저희도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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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에서 운영 중인 병원선 순회 진료 서비스를 받는 섬 지역 주민들. 사진 경남도
병원선 환자 3명 중 1명은 ‘사량도’…통영시 “대책 강구 중”
때문에 의료 여건이 열악한 섬 지역 현실을 고려해 약사법에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영시의회 김혜경 의원은 “병원선까지 중단하는 일은 섬 주민 의료 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행정의 폭넓은 해석과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섬 진흥원 등 여러 곳에 호소하며 해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통영시 등 행정당국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통영시보건소 관계자는 “지역민 불편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등 상급 기관에 의약분업 예외 지역 규정 관련 질의를 한 상태”라며 “현재 예외 지역 재지정이 가능한지 등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하며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