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내 폭염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남구 방림동의 고물상 주변 모습. 천권필 기자
동남아시아는 비가 오면 잠깐 시원해지는데 광주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너무 더워서 못 견디겠어요.
광주광역시에서 10년째 유학 중인 말레이시아인 케리(34)씨는 올여름을 나기가 유독 힘들다고 했다. 밤 10시에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가도 열대야 탓에 금세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켠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그래도 밤에는 시원했는데 여기는 자정에 나가도 똑같이 더워서 끔찍하다”며 “올해 더위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온도·습도 동시에 상승 ‘더위의 가속화’

광주시내 폭염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남구 방림동 일대. 천권필 기자
윤 교수에 따르면, 습구온도(공기중 상대습도를 반영한 온도)는 최근 12년(2012~2023년) 여름 평균 25.93도로 과거 12년(2000~2011년)의 24.95도보다 1도가량(0.98도) 올랐다. 온난화로 인한 최고기온 증가폭(0.72도)보다 1.4배 빠른 상승 추세다.
습구온도가 높으면 땀을 통해 열을 식히기 어려워 열사병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통상 습구온도 35도가 되면 인간의 자체 냉각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여름도 습한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12일까지 지난해보다 많은 240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21명이 사망했다. 가축도 70만 마리 이상이 찜통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했다.
윤 교수는 “21세기 이후 한반도와 중국 해안 지역, 일본을 중심으로 습구온도가 기온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다”며 “동아시아 쪽으로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강해지면서 남서풍을 따라 수증기 유입이 많아진 데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높은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비 오면 더 힘들다” 찜통폭염에도 파지 줍는 노인들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에서 한 노인이 폭염 속에 리어카를 끌고 파지를 줍고 있다. 천권필 기자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밀집돼 있고 노령 인구까지 많은 광주시의 구도심 지역은 찜통폭염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녹지가 부족해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인다. 광주 남구 방림동의 한 고물상에는 숨도 쉬기 어려운 무더위 속에서도 노인들이 리어카에 파지를 가득 채워 왔다. 온열지수를 측정해보니 32를 기록해 ‘매우위험(31 이상)’ 기준을 초과했다.
유모씨(80)는 “비가 와도 더위가 식지 않고 땅에서 습기가 올라와 더 힘들다”며 “마스크에 금세 땀이 차서 하루에 3개씩 갈아 쓰면서 파지를 주우러 다닌다”고 말했다. 고물상 주인도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노인도 있다”고 했다.
체감 폭염일수 30년새 2.5배 증가 “광주는 습식 사우나”

정근영 디자이너
체감 33도 이상을 기록한 폭염일수 역시 광주는 최근 5년(2020~2024년) 평균 30.6일로 30년 전(1990~1994년)보다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배 늘어난 대구(25.6일)를 역전했다.

광주 및 대구의 체감 33도 이상 폭염일수 비교. 기상청 제공
김연수 광주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구가 건식 사우나라면 광주는 습식 사우나에 비유할 수 있다”며 “해안가에 가까워 남서풍 영향을 많이 받고 강수량도 많아서 체감온도로 보면 광주가 훨씬 더 덥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에서는 도심 내 인공 그늘막을 늘리는 등 강력해진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습한 폭염으로 인한 열 스트레스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폭염 대책이 가장 더운 낮 시간대에 집중돼 열대야 등 밤까지 이어지는 열기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 김 연구위원은 “온열 질환자가 낮뿐만 아니라 아침과 밤에도 발생하고 있다. 24시간 일하는 택배 기사 등 야간 근로자들의 온열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폭염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 스트레스로 3000조 손실”…도시 내열화 시급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점점 더 치명적인 폭염으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더위에 직면하고 있다”며 “도시 설계를 통해 온도를 낮추고, 냉방 기술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상승하는 기온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