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30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를 위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대통령실 제공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30일 윤석열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는 이날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회 등 헌법기관을 장악·무력화하고 국헌을 문란하게 한 혐의(내란·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했다.
수사기관이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공수처는 이날 윤 대통령의 세부 위치를 확인해 체포하기 위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대한 수색영장도 함께 청구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는 앞서 3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윤 대통령이 지난 18·25일에 이어 29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하라는 최후통첩마저 불응하자 공수처는 이튿날 0시에 곧장 체포영장 청구로 응수했다. 공수처는 이날 체포영장에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적시하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와 계엄 선포를 사전 모의하고, 내란 임무를 지시·하달했다는 혐의를 담았다. 형법상 내란 수괴 혐의가 인정될 경우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란 수괴 혐의는 구속 수사가 원칙"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스1
오동운 공수처장은 지난 18일 윤 대통령의 첫 번째 소환통보 거부 이후 줄곧 수사팀과 체포영장 청구 필요성을 논의해 왔다. 다만 수사 대상이 현직 대통령인 데다 윤 대통령의 수취 거부 등으로 출석요구서가 송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추가로 두 차례 더 소환을 통보하며 체포 명분을 쌓았다. 오 처장이 체포영장 청구를 결심한 건 윤 대통령 측에서 “공수처는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불출석 사유서조차 제출하지 않으며 소환에 불응하는 등 수사 협조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면서다.
공수처 수사팀은 최근 회의에서 “출석요구서 송달 거부 역시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봐야 한다”며 체포영장 청구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3차 소환 통보까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다가 체포영장이 청구된 이날에야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내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면 공수처는 최대 48시간 동안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해 강제 조사를 할 수 있다. 공수처는 체포 기간 국회·선관위 장악 및 정치인 체포조 운용 등 드러난 범죄 혐의에 관한 진술을 받은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 처장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내란죄의 수괴와 내란죄의 중요 범죄 종사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고 한 바 있다.
檢·공수처 나눠갖는 구속기간 …'신속수사' 과제
형사소송법상 구속 기간은 최장 20일(체포기간 포함)이지만, 공수처는 내란죄 기소권이 없는 탓에 기소를 담당하게 될 검찰과 구속 기간을 나눠 써야 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발부되더라도 공수처는 10일 이내 수사를 매듭짓고 사건을 검찰로 이첩할 예정이다. 공수처로선 검찰·경찰 등에서 주요 사령관들의 수사기록을 송부받은 뒤 이를 토대로 윤 대통령의 진술을 확보해 범죄 혐의를 구성하는 일련의 절차를 10일 이내에 끝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12.3 비상계엄의 밤, 윤이 직접 내린 지시들 그래픽 이미지.
검찰은 지난 27일 김용현 전 장관을 기소하고 이튿날 진술 조서를 공수처에 송부했다. 이외에 방첩·수방·특전 사령관 등 검찰서 수사 중인 내란 핵심 피의자의 경우 공수처는 아직 관련 진술과 증거 등을 확인하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내란 혐의 피의자 중 처음으로 기소된 김 전 장관 사건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에 배당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윤갑근 변호사는 30일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 청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뉴스1
윤 대통령 측은 이날 체포영장 청구를 “권한 없는 기관의 부당한 체포 영장”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서울서부지법에 의견서를 내고 “법리적으로 보면 공수처의 체포 영장은 각하돼야 한다. 체포영장 청구의 요건으로 비춰봐도 범죄 혐의의 어떤 상당성이나 소환 불응이라는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직인 윤 대통령은 불소추특권이 적용된다. 내란죄의 경우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범죄 혐의지만, 정작 내란죄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수사가 가능한 윤 대통령 직권남용 혐의의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변호사는 “내란죄는 직권남용의 법정형이나 죄의 성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데, 직권남용이라는 가벼운 범죄를 가지고 내란죄의 수사 관할을 주장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마치 나뭇잎(직권남용)이 담장을 넘어왔다고 나무(내란) 그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하나의 사소한 범죄와 관련성이 있다면 법상 한계를 넘어 (모든 혐의를) 다 수사할 수 있겠냐”며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는 만큼 (소환 불응은) 정당한 불출석”이라고 주장했다.
“경호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땐 현행범 체포 대상”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 관계자들. 경호처의 거부로 이날 압수수색은 무산됐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경호처를 동원해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경찰·공수처·국방부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는 대통령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고도 경호처의 저지로 대통령실 내부로 진입하지 못한 채 관련 자료 일부를 임의제출 받는 데 그쳤다. 당시 대통령실의 압수수색 거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제110조)에 근거한 조치였지만 체포영장의 경우 경호처가 집행을 막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체포영장을 거부할 경우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하고, 물리력을 활용해 영장 집행을 막는 건 폭행·협박에 해당한다”며 “물리적 충돌이 없다 해도 관저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영장 집행을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현행범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석경민·전민구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