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물가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2~3월(3.1%)을 지나 4~8월 2%대로 둔화했다. 9월엔 1.6%까지 내려 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어 10월(1.3%)과 11월(1.5%), 12월(1.9%)까지 1%대를 기록했다. 1%대긴 하지만 하반기 들어 상승세를 탄 점은 위험요소다.
가격 변동 폭이 큰 식료품·에너지 관련 품목을 빼고 물가 수준을 집계한 근원물가 지수는 2.2% 올랐다. 2023년(3.4%)보다 상승 폭을 줄였다. 백지선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 물가 상승세가 꺾인 영향이 컸다”며 “2023년 6% 뛰었던 외식 물가가 올해 3.1% 오르는 데 그쳤고,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도 같은 기간 6.8%에서 1.8%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金) 사과, 금 배추’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뛴 장바구니 물가가 그늘이었다. 과일·채소·해산물 등 계절·기후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한 신선식품지수가 9.8% 올랐다. 2010년(21.3%)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사과·배 물가 상승률은 각각 30.2%, 71.9%에 달했다. 배추 물가도 25% 올랐다.
물가를 집계할 때 연간 수치를 비교한다는 점에서 ‘기저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비교 대상인 2023년 물가 상승률이 3.6%로 낮지 않았다. 게다가 2022년(5.1%)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뒤 24년 만에 물가가 가장 높았을 정도다. 최근 물가 하락세가 만약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의 전조라면 마냥 좋게만 볼 수도 없다.
물가 상황판에 주목하는 건 한은의 기준 금리 인하와 얽힌 문제라서다. 물가가 안정돼야 금리 인하론에 힘이 실린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수 침체를 극복하려면 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며 “물가가 2%대까지 떨어진 만큼 (금리 인하) 여건은 충분히 마련됐다”고 말했다.
내년 전망은 흐리다. 최근 고환율 추세로 수입 물가부터 오르는 데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라 물가에 불똥이 튈 수 있다. 탄핵 정국으로 접어든 국내 정치 상황, 국제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흐름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31일 “당장 다음 달 물가 상승률이 최근 고환율 등 영향으로 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물가 상승률은 국제유가 상승세 둔화, 근원물가 안정 흐름 등을 고려할 때 올해보다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