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작년 수출 역대 최고인데 못 웃는다…트럼프‧탄핵에 한숨

지난해 한국 수출이 역대 최대 성적을 거뒀지만, 재계는 표정이 밝지 않다. 축포를 터트리며 들떠야 할 재계가 웃지 못하는 이유는 올해 험난한 한 해가 예상돼서다. 올해 한국 수출의 가장 큰 벽은 ‘트럼프 발(發) 통상정책’이다. 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표적이 될 수 있어서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액은 6838억 달러(약 1006조4168억원)로, 역대 최대다. 무역수지도 518억 달러(약 76조2392억원)를 기록하며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수출을 견인한 쌍두마차는 반도체와 자동차였다.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한 반도체는 전년 대비 43.9% 늘어난 1419억 달러(약 208조8484억원)를 벌어들였다. 올해 업황도 순탄할 전망이다. 지난해 수출의 큰 몫을 차지한 고부가가치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DDR5 등 수요가 꾸준하다. 지난해 708억 달러(약 104조2034억원)를 벌어들인 자동차도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3년 연속 최대 실적 행진이다.

반도체 패키징 기판 조립 제조. 셔터스톡

반도체 패키징 기판 조립 제조. 셔터스톡

 
문제는 이들 분야가 미국 통상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자국 내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추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부정적이다. 국내 반도체‧자동차 기업들이 대규모 미국 투자에 나선 건 IRA를 통한 보조금‧세제 혜택이 있어서였다.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시에 2030년까지 400억 달러(약 58조8720억원) 투자 계획을 추진하고,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6958억원)를 들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짓는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IRA 축소로 약속된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금 계획 등에 차질이 생긴다. 

미국의 중국 견제 강화도 변수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 제품에는 60% 이상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예고했다. 중국산 컴퓨터·휴대전화·TV 같은 완제품의 미국 수출 물량이 줄어들면 한국이 중국에 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중간재 수요도 감소하게 된다. 특히 보편 관세 인상은 한국에서 미국 내 공장으로 보내는 원자재 값 상승이 유발된다. 이 때문에 한국무역협회도 올해 반도체 수출이 “꾸준한 수요에 힘입어 지난해 규모를 소폭 상회할 전망”이라고 분석했지만, 수출 증가율은 2.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업계도 비슷한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석유 등 전통 에너지와 화석연료 기반 산업에 대해 호의적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예고했다. 한국 자동차업계에서 집중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은 수요 감소 등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지은 전기차 전용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공급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무역협회는 올해 자동차 수출이 1.9%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발 한파’가 코 앞이지만, 탄핵 정국으로 인한 통상외교 공백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통령 대대행 체제로는 미국과 협상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우려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과 연구개발(R&D) 인력에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로 두는 내용 등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 전력망 인허가 절차 개선 방안을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기업들의 뒤를 받쳐줄 법안 시행이 묘연한 것도 재계가 울상인 이유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한층 격화될 미·중 무역갈등과 중국의 저가공세에 더해 국내 정치 혼란에 따른 불확실성 지속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기업들의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