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軍 통수권에도 한계 있다…‘권한’보다 ‘의무’ 앞에 둔 헌재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이 탄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이 탄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국군 통수권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군을 통제하는 권한보다는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라는 헌법 정신에 따를 의무를 더 중시한 결과로, 정치권 전반의 ‘군 흔들기’ 시도에도 경종을 울렸다는 분석이다.  

'헌법 따른 제한' 명시 

지난 4일 공개된 헌재의 파면 결정문에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 계엄 국면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동원했다는 지적이 곳곳에 담겼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헌법에 따른 국군통수의무 위반’을 중시했는데, ‘군통수의무’란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헌법 5조 2항은 “(국군의)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는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이를 준수해야 하는 주체로 본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으로 군 통수권을 행사한 것은 군통수의무 위반이라는 게 골자다.

통상 헌법 제74조 1항(‘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군을 통수한다’)은 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전군에 대한 통제 권한을 의미한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그런 대통령의 통수권도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와 관련해선 헌법상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을 헌재가 강조한 셈이다.

이에 더해 헌재는 군의 정치적 중립 훼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시했다. “국군이 정치에 개입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원하는 등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과 더불어 “정치권이 국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거나 국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규정하면서다. 이는 계엄을 명분으로 야당이 군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 정치권 전반을 향한 경고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5조 2항이 군 스스로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방점을 뒀다면, 최근 들어선 대통령과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중립성 준수 요구로 의미가 확장됐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에 투입된 제1공수특전여단 이상현(오른쪽) 여단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에 투입된 제1공수특전여단 이상현(오른쪽) 여단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

실제 12·3 비상계엄의 폭풍에 휩쓸린 직후 군 내부에선 “지난 30년 간 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대다수 군인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나왔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4일 헌재의 파면 결정 직후 전군 지휘관 회의를 열어 “전 장병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엄정하게 준수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흔들림 없이 매진하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통일안보북한학과 교수(전 국방부 대변인)는 “최근 들어선 정권마다 국방부 내 과장급 중견 관리자에 대해서까지 인사권 행사로 인한 줄 세우기가 도마 위에 오를 정도”라며 “군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치권도 보장해줘야 군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계엄 해제 핵심은 군경의 ‘소극적 저항’ 명시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결정문에는 계엄 해제가 윤 전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는 대목도 들어갔다. 일례로 ‘국회 내부로 들어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이 이를 정당하지 않은 임무라고 생각해 후속 부대에 서강대교를 건너지 말 것을 지시한 점 등을 들었다. 헌재는 국회에 들어간 병력의 실탄 소지를 금하거나, 결의안 해제 이후 병력을 철수한 것도 “모두 군인들이 자체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이와 관련, 윤 전 대통령은 국회 등으로 출동하는 군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달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이 실제 비상 상황을 전제로 마련된 매뉴얼대로 행동하기를 용인”한 것이라고 했다. 결국 계엄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군인들에게 미루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국회의원들과 대치하는 것을 꺼린 군인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계엄 장군들 판결 영향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혐의를 받는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혐의를 받는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반적으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군은 이용 당한 것이라는 시각에 무게를 뒀다. 이는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나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계엄 장군’들이 군사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항변 취지와도 궤를 함께 한다. 

다만 탄핵 심판에서의 판단이 이들의 내란죄 형사 재판에 즉자적으로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번 결정문에는 계엄 장군 중 일부는 계엄 선포 며칠 전부터 대비 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받았고, 당일 계엄 선포 전에 이미 출동 지시를 받은 부대가 있었다는 점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사례에선 당시 군내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있어 정변의 사전 모의 여부가 비교적 명확했다”며 “이번 사례에선 장군들의 국헌 문란 목적이 얼마나 입증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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