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하얼빈'이 촬영 당시 비하인드컷을 공개했다. 사진 CJ ENM
독립투사 안중근(1879~1910)의 하얼빈 의거(1908년)를 그린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이 개봉 19일만인 11일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13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하얼빈’ 누적 관객수는 418만명. 미국‧일본‧프랑스‧대만‧호주 등 117개국에 판매돼 지난달 25일 미국‧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해외에도 차례로 개봉하고 있다.
국내에선 상업영화치고 전개가 느리다는 반응도 있지만 “역사의 한 장면을 아름답게 남겨주어 감사하다”(이하 CGV 예매앱 관람평) 등 호평이 우세하다. 이런 관객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글로 배운 것보다 더욱 실감나게 그때 그 분통함과 애절함, 모두의 애국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묘사를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연출을 맡은 우민호 감독(‘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대자연 속에 독립군들의 정신과 마음을 명화(名畫)처럼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미학을 위해 상상을 보탰다고 밝혔다. 시나리오 작가 김경찬, 우 감독이 공동 각본을 맡았다.
‘하얼빈’, 어디까지 실제일까. 이 영화 자문에 참여한 동북아역사재단 신효승 연구위원을 비롯해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교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유정환 학예연구사(안중근 유묵전 담당) 등에 본지가 자문을 구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을사늑약(1905년)을 강행한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저격 사건까지 큰 맥락은 사실이 기반이되, 허구적 상상이 상당히 가미됐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로서 안중근 의사의 가장 큰 고뇌, 즉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거사란 지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 했다”는 비판과 “역사학이 밝히지 못한 부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흥미롭다”는 입장이 교차한다.
영화 '하얼빈' 초반부 신아산 전투 장면에서 극중 독립군 김상현(조우진, 가운데)이 일본군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다. 기록적 폭설이 내린 전라도 광주에서 해당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CJ ENM
영화 오프닝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이 승전을 이끄는 신아산 전투(1908년)신부터 일부 허구다. 대승 후 안중근 의사가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군 전쟁포로를 풀어준 데까진 “안중근 자서전 등에 나오는 내용”(유정환). 그러나 이때 풀려난 후 안중근에 집착하며 끈질기게 뒤를 쫓는 일본군 적장 모리(박훈)는 “극적 효과를 위한 허구의 인물”(신효승)이다.
신아산 전투 시기도 실제론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닌 여름(7월)이었다. 전쟁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연구해온 신효승 연구위원은 “영화적으로 안중근 의사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장면과 연결해 (계절을) 변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투신에서 독립군이 원거리 매복전을 벌이다 처절한 백병전에 뛰어드는 상황에 대해서도 “실제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전술적으론) 납득이 가지 않지만, 비장미를 위한 선택일 것”으로 봤다.
'하얼빈'에서 남편을 여읜 공부인(전여빈, 오른쪽)이 안중근 의사와 함께 작전에 나선 모습. 공부인은 창작진이 상상을 보태 만든 인물이다. 사진 CJ ENM
등장 인물도 실제와 허구가 섞였다. 하얼빈 거사에 동참하는 독립군 중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같은 날 채가구 기차역에서 거사를 대비한 우덕순(박정민),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가 최재형(유재명)만이 실존 인물이다. 무기를 조달하는 공부인(전여빈)은 역사에 가려져온 여성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대변해 빚어냈다. 반목과 결의를 오가는 독립군 김상현(조우진), 이창섭(이동욱)도 영화가 상상한 인물이다. 유정환 학예연구사는 “유동하, 조도선 등 실제 하얼빈 거사에 가담한 인물이 토대가 된 걸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독립군 사이에 의심을 싹틔우는 밀정 설정은 “일본 밀정이 5만명이나 깔려있었다는 그 시절”(신운용) “크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유정환)란 평가다. 우영장 안중근과 함께 좌영장으로서 의병부대를 지휘한 실존 인물 엄인섭이 훗날 변절해 연해주 지역 일제 밀정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고, KBS ‘시사기획 창-밀정 편’(2019)은 우덕순이 일본 외무성 지원을 받는 조선인민회 간부였던 등을 근거로 밀정설을 제기하는 등 학계에서도 여러 주장이 나온다.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세상을 떠난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명감을 짊어진 내면을 끝없이 얼어붙은 대동강을 건너는 모습으로 상상한 장면. 몽골 홉스골 호수에서 촬영했다. 익명으로 요구한 한 안중근 연구가는 실제 대동강은 강폭이 매우 좁다며 영화가 미학적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사진 CJ ENM
신효승 연구위원은 “당시 조선인의 대내외적 위치와 정체성은 굉장히 불확실했다”면서 이를 비롯해 ‘하얼빈’에 “1905년(을사늑약 체결)부터 1910년(한일합병)까지 ‘과연 주권 회복이 가능할까,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을까’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고민이 많이 묘사됐다”고 주목했다. 신 위원은 또 “하얼빈 기차역에서 의거 실행 모습은 밝혀진 게 많지 않은데, 영화에선 안중근이 이토를 따라가며 찾는 모습이 나온다. 촬영 과정에서 거사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며 찾아낸 가능성의 제시가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하얼빈 의거 후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어로 “한국 만세(Корея! Ура)”를 외친 장면은 큰 이견이 없었다. 비상계엄 시국과 예기치 않게 맞아 떨어졌다고 평가 받는 안중근 의사의 후반부 내레이션은, 영화적 상상으로 보는 학자가 많았지만 우 감독은 실제 인용구를 변주한 것이란 입장이다. 『안중근 동양평화론 자서전』(부크크) 속 “우리들이 단 한 번의 의거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첫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을 해야 하며 백 번 꺾여도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안중근 의사 인용구에 “불빛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 등 일부 구절을 그가 덧붙여 완성했다.
"안중근 고뇌 제대로 못 다뤄…'국뽕' 심해"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들이 전투에서 생존한 후 모인 회의 장면. 신운용교수는 "일본 밀정이 5만명이나 깔려 있던 당시 이 정도 인원이 모인 회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영화적 상상"으로 바라봤다. 사진 CJ ENM
그간 영화에서 안중근 의사는 ‘의사 안중근’(1972)의 1960년대 은막 스타 김진규, ‘도마 안중근’(2004)의 주연 유오성, 동명 원작 뮤지컬에 이어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2022) 주연을 맡은 정성화 등 묵직한 이미지의 배우가 도맡았다. 순제작비 265억원 대작 ‘하얼빈’의 한류 스타 현빈 캐스팅은 티켓파워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안중근 연구가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모습이 제대로 고증된 건 골초란 것밖에 없다. 키 163㎝ 작은 거인인데 안중근, 하면 대부분 우람하고 멋있는 배우가 맡는다”면서 “3년간 의병 운동에 실패도 하는 등 결함도 많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희생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진정한 고뇌를 봐야 하는데 영화고 소설이고 제대로 다룬 작품이 없다. ‘국뽕’이 심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창작적 상상력 좋지만, 사실과 다르다 자막 필요"
영화 '하얼빈' 촬영 당시 우민호 감독(왼쪽부터 다섯번째)과 주연 현빈(왼쪽 네번째)의 모습. 영화엔 아우를 잃고 마적이 된 과거의 독립투사(정우성)도 등장한다. 사진 CJ ENM
다만, 신효승 연구위원은 “영화를 다큐처럼 찍어 달라는 것은 역사 교육을 외주화하는 것”이라며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2차 저작물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게 문제다. 역사를 동떨어진 과거처럼 배우는 현행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의 역사부터 확대해가는 교육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운용 교수는 “창작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관객의 오해를 막기 위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자막은 필요하지 않나”라고 짚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