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AI 기술은 혁신인가,권리 침해인가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드라마 '원경' 포스터. 사진 tvN, 티빙

드라마 '원경' 포스터. 사진 tvN, 티빙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티빙 드라마 ‘원경’은 태종 이방원과 함께 권력을 쟁취한 원경 왕후의 이야기다. 소재도 신선했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호평 받았다. 하지만 방영 초반 CG 합성 기술이 연출에 적극 활용됐다는 이야기로 예상치 못한 논란이 일었다. 19금 버전에서 대역 배우의 몸에 주연 배우의 얼굴을 합성한 장면이 공개되면서, 딥페이크 기술이 배우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다. 논란의 핵심은 ‘배우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는가’였다. 또 이 문제는 나아가 ‘대역 합성이 아닌 AI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져왔다. 

사실 AI 기술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행위는 명백한 범죄이지만, 그 불법성은 기술을 위법하게 이용한 행위에 있는 것이지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콘텐트 제작에서의 AI 활용은 오히려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기술이 ‘어떻게, 누구의 동의 하에, 어떤 범위에서 사용되는가’에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AI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스타워즈: 로그 원’에서는 1994년 사망한 피터 쿠싱(타킨 장군 역)이 AI 기술을 이용해 영화 속에서 부활했고,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캐리 피셔(레아 공주 역)의 모습을 기존 촬영분과 CGI로 재현했다. 국내에서도 AI 활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에서는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 모습을 AI 기술로 재현해 몰입도를 높였다.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서는 최민식의 젊은 시절 모습과 목소리를 AI 기술로 구현했다. 만약 이런 기술이 없었다면, 닮은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분장으로 표현하는 한계 속에서 연출해야 했을 것이다.

AI 기술로 완성한 최민식의 젊은 시절. 디즈니 플러스 '카지노'에서 볼 수 있다. 사진 디즈니 플러스

AI 기술로 완성한 최민식의 젊은 시절. 디즈니 플러스 '카지노'에서 볼 수 있다. 사진 디즈니 플러스

 
하지만 AI 기술이 배우의 동의 없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2023년 할리우드 배우·작가 조합(SAG-AFTRA) 파업 당시, 배우들은 “우리의 초상과 목소리를 AI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도록 계약하는 건 부당하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글로벌 OTT 제작사들은 이미 AI 기술의 활용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초상권 계약을 세분화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필자가 과거 자문했던 글로벌 프로젝트에서도, 배우와의 출연 계약과는 별도로 “초상을 3D로 스캔하여 AI 기술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 계약을 통해 배우는 자신의 초상이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명확히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예를 들어, 배우가 동의하면 스턴트 장면이나 특정 연령대의 모습을 AI로 구현할 수 있지만, 민감한 장면에서는 최종 승인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AI가 그린 그림. AI 기술을 활용하는 현대 드라마 제작 현장을 보여주는 이미지.

AI가 그린 그림. AI 기술을 활용하는 현대 드라마 제작 현장을 보여주는 이미지.

 
AI 기술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종래 기술적 한계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작사와 배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AI 기술을 활용하려면 사전 동의를 철저히 거쳐야 하고, 초상 사용의 범위도 계약서에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작 과정에서도 배우와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피드백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제작사가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배우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AI 기술은 논란거리가 아니라 콘텐트의 발전을 이끄는 혁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 Law 이슈]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 Law 이슈]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20여 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