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무심코 넘긴 부모님 말, 치매 불렀다 [건강한 가족]

관리 사각지대 노인성 난청


65세 이상 8%만 보청기 착용해
청력 저하 조기 개입해야 효과 커
유전적 요인 작용해 청력 검사 필요

나이 들면서 치아가 약해지면 틀니·임플란트를 하고, 시력이 나빠지면 돋보기를 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받는 수술은 노화한 수정체를 교체하는 백내장 수술이다. 시력이나 음식을 씹는 저작 기능이 떨어지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과 달리 청력엔 상대적으로 무심하다. 듣기에 불편함을 느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흔하다.

출처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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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5명 중 1명(22%)은 청력 저하로 일상에서 불편을 겪는다. 하지만 보청기 같은 청력 보조기를 쓰는 사람은 8%에 불과하다. 안경 등 시력 보조기 착용률(44%)과 틀니·임플란트 사용률(25%)보다 훨씬 낮다. 보청기 착용을 망설이거나 청력 저하를 가벼운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는 삶에 익숙해지면 뇌가 빨리 늙는다.

A씨(73)는 4년 전 귀가 점점 안 들려 불편하다며 병원을 찾았다. 청력 검사 결과 양측 중등도 난청(53·56dB)이었고 의사는 보청기 착용을 권했다. 고민해 보겠다며 돌아간 A씨는 4년 후에야 자녀 손에 이끌려 다시 병원에 왔다. A씨의 말수가 부쩍 줄었고, 집에만 있는다는 것이다. 재검사 결과, 난청이 악화하면서 말소리 이해력(언어검사)도 100%에서 70%대로 감소했다.

B씨(73)는 청력이 나빠진 후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직장에선 실수를 반복하며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 퇴사했다. 이후 대인기피로 집에서만 거의 생활했다. 그러다 1년 만에 가족의 설득으로 병원을 찾았고, 보청기를 처방받아 청력이 개선(55·50dB→34·26dB)되면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치매 예방 3분의 1은 난청 관련

세계보건기구(WHO)는 ‘활동적인 노년’을 평가하는 요소로 청력·시력과 저작 기능을 꼽는다. 난청이 있으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은 치매 위험을 높인다. 국제학술지 랜싯(Lancet)의 ‘치매 예방, 중재 및 관리 보고서’(2024)에 따르면 치매 예방에 기여하는 항목의 3분의 1은 난청과 관련 있다.

박시내(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대한이과학회장은 “노인성 난청은 초고령화 사회의 주요 문제인 치매 위험을 5배까지 높인다”며 “난청을 빨리 발견해 조절해야 치매로 진행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고 강조했다.

잘 안 들리면 응급 상황에서 대처가 어렵다. 교통사고와 낙상 위험에 노출된다.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박무균(대한청각학회 학술임원) 교수는 “노인성 난청은 건강 수명을 2.2~2.5년 줄게 한다. 이는 만성신부전, 교통사고, 고혈압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보청기 착용은 건강 수명을 0.5년 연장한다. 주요 만성 노인성 질환 치료 중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뛰어난 경제적 치료”라고 설명했다. 건강 수명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보청기로 청력을 회복하기 어려우면 청각 기기를 귀에 이식하는 수술로 재활한다. 머리뼈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골도 보청기 이식, 손상된 고막과 이소골(작은 뼈) 기능을 보완하는 중이 임플란트와 함께 달팽이관(내이)을 대신하는 장치인 인공 와우 이식이 대표적이다. 박시내 회장은 “청력이 나빠지면 사람과의 단절이 시작된다. 난청이 심한 채로 80세, 90세를 맞이하면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고통스럽다”고 했다. 

노화성 난청은 진행 속도가 관건이다. 청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면 65세 이전이어도 노화성 난청이 나타난다. 난청에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므로 부모의 청력이 약하면 주기적으로 청력 검사를 받는 게 조기 발견에 도움된다.

만성 소음·염증 조절해야

일부 항생제·항암제 등 약물은 청각 신경에 영향을 준다. 이를 이독성 약물이라고 한다. 만성 중이염을 방치하면 염증때문에 청력은 계속 나빠진다. 박 회장은 “군 복무 중 사격 훈련, 공장 등 산업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소음 노출이 국내 남성 노인의 난청 원인”이라고 했다.

주저 말고 이비인후과에 가 청력 검사를 받아야 하는 신호는 ▶자꾸 ‘뭐라고’라며 되묻고 ▶주변에서 여러 번 불러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TV 소리를 점점 높이고 ▶대화 중 특정 단어를 놓치거나 ▶말소리가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 않고 ▶귀울림(이명)이 있는 것이다. 이명 환자의 90% 이상은 난청을 동반한다. 이비인후과에서 귀 상태를 확인해 약물이나 보청기, 인공 와우 등 적절한 치료를 하루빨리 시작하는 게 최선이다.

소음이 심한 환경에선 이어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귀를 오래 쓰는 길이다. 외부 소음을 줄여주는 기능(노이즈캔슬링)의 이어폰이어도 머리뼈(골도)를 통해 들어오는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다. 소리의 시작점인 달팽이관 내 유모세포가 약해져 있을수록 소리를 더 크게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귀에 안 맞는 보청기는 무용지물, 난청 국가 책임제 절실" 

 

70세 이상 4명 중 1명, 80세 이상에선 2명 중 1명가량이 노인성 난청이다. 하지만 환자 10명 중 1명만 보청기를 쓴다. 이마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게 흔하다고 한다. 박시내(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대한이과학회장(사진)에게 보청기 착용 실태를 들었다.

-착용률이 왜 낮나.
“속삭이는 게 안 들리는 난청(40~60dB)이면 고민할 필요 없이 보청기를 바로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건강보험의 보청기 비용 지원은 청각장애인(60dB 이상)만 적용된다. 너무 늦다. 경도 난청(25~40dB)만 돼도 치매 위험을 두 배 높인다. 청력 저하는 조기에 개입할수록 효과가 크다. 난청 국가 책임제를 도입해 사각지대인 중등도 난청(40~60dB)에 보청기 비용을 절반이라도 먼저 지원해야 할 때다. 환자가 제도권에 들어오면 이비인후과에서 귀 상태를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와 보청기를 처방받는 길도 열린다. 귀에 안 맞는 보청기는 10년을 써도 무용지물이다.”

-귀에 안 맞는 착용이 많은가.
“안 들린다고 무조건 보청기부터 착용하면 난청의 근본 원인을 놓칠 수 있다. 문제 되는 부분을 해결하는 수술, 시술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임상 경험상 수술로 청력이 올라가는 환자가 의외로 많다. 그러면 작고 가벼운 보청기로도 충분히 효과를 보는데, 환자가 고생을 안 한다. 소리를 전달하는 대롱 모양의 작은 뼈(이소골)가 굳어서 잘움직이지 않거나 만성 중이염이면 성형술로 근본 치료를 한다. 이런 정보를 알아야 한다. 또 보청기가 꼭 필요한지 정확히 판단해 줄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인공 와우 이식이 필요한 귀에 보청기만 10년 이상 착용해 대화의 10~20%만 겨우 알아듣고 살아온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제때 진단과 치료받을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

-무늬만 보청기가 되지 않으려면.
“보청기는 청력 상실을 늦추고 치매를 예방하며 이명·어지럼증을 낫게 하는 치료 도구다. 살짝 더 잘 들리는 것만으로는 제값을 못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청력을  추적 검사하면서 보청기 주파수를 조정해야 한다. 정기적인 청각학·언어적 평가를 받고 최적의 설정을 유지해야 보청기가 주는 이득을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