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오는 12일(현지시간)부터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일괄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사진은 11일 인천 시내 한 철강제조 공장의 모습. 뉴스1
정부는 11일 이런 내용의 ‘무역위원회 직제 일부 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오는 18일 시행하기로 했다. 이번 조직 개편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에 ‘덤핑조사지원과’와 ‘판정지원과’를 신설하고, 인원을 기존 4개과 43명에서 6개과 59명으로 16명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는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대비해 조직했던 5개과 52명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아울러 ▶조사기법 고도화 ▶우회덤핑방지제도 ▶보조금 조사와 상계관세 부과 기반 구축 등도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추진한다.
산업부는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에 따른 저가 제품의 국내 유입 확산 등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통상 방어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 철강ㆍ석유화학 제조기업의 덤핑 공세는 최근 들어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지난해 무역위에 접수된 덤핑조사 신청은 10건이었는데 이 중 8건에 중국산이 포함됐다.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규제 당국에 피해를 호소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업은 존폐 위기에 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진 탓이다.
올해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무역위는 지난 4일 중국ㆍ일본산 철강 열연제품에 대한 덤핑조사 개시했다. 이에 앞서 올 1월엔 중국산 스테인리스스틸 후판, 2월 중국산 열간압연 후판에 대한 덤핑 예비판정을 내렸다. 특히 2월 덤핑 예비판정을 통해 중국산 제품에 27.91~38.02%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미ㆍ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덤핑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제품이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로 쏟아져 나올 수 있어서다. 세계 각국에서 중국의 덤핑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이유다.
WTO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중국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는 1017건으로 전체(3086건)의 33%를 차지했다. 특히 최근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 무역구제정보망(CTRI)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산 수입품을 대상으로 한 세계 각국의 무역구제 조사 건수는 198건(반덤핑 156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87건)과 비교해 2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유럽연합(EU)의 신규 수입 규제(반덤핑ㆍ상계관세) 조사 개시 건수는 총 18건으로 201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15건이 중국 대상이었다. EU는 최근 중국산 철강 제품 3종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고, 중국산 냉연강판에 대해선 임시 반덤핑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멕시코 정부는 지난 6일 미국산ㆍ중국산 일부 알루미늄 제품의 저가 공급에 따른 자국 산업 피해 여부를 살피기 위한 덤핑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도 최근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아연도금 합금과 비합금 강판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역시 중국산 철강 제품을 겨냥해 15~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각국의 이런 반덤핑 조치에 대해 보복관세 부과 등의 적극적인 대응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반덤핑 조사와 관세 부과 자체가 WTO 반덤핑 협정에 따른 합법적 조치라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덤핑 공세가 지난 수년간 이어져 왔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에선 ‘상대 교역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기조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추세에 맞춰 무역위 기능을 강화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편 무역위는 이날 “조직 확대 개편에 맞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국제법ㆍ회계ㆍ특허 관련 민간 전문가를 3개월 내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