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회생법원 전경. 중앙포토
서울회생법원이 기업회생 절차를 확장적으로 재편한다. 서울회생법원은 16일 간담회를 열고 “회생신청 전 당사자들을 모아 진행하는 예방적 조정절차(pre-ARS)를 신설하고, 워크아웃과 ARS 회생절차의 장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형태의 절차도 새롭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1일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한다.
정준영 법원장 “‘도산 예방’ 조정 절차 도입”
민사재판에서의 양 당사자간 조정 제도와 유사하게 운영되며, 기본적으론 민사조정법의 절차를 따른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필요할 경우 외부 법무법인, 혹은 기업가치 평가를 위한 회계법인 등 전문가를 선임해 조정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금융채권 외에 상거래채권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회생법원은 “주요 금융기관과의 협상이 대부분일 것으로 예상하고, 다른 채권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본질적으로 ‘법원이 주관하는 비공개 채무조정 협상’의 성격을 띠며, ‘비공개’가 핵심이다. 정준영 법원장은 “큰 기업은 채권자와 채무협의를 한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기업활동에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며 “회생절차까지 가기 전에 채권자‧채무자 간 자율협상의 테이블을 여는 중립적 주관자의 역할을 회생법원이 하게 되고, 이 협상은 모든 가능성을 유연하게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채권자와 기업 간 합의가 성립하면 약정서를 쓰고 조정취하로 사건을 마무리하게 된다. 조정이 잘 되지 않거나 더 광범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날 경우 본격적인 회생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다.

황인성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물품구매용 유동화전단채(ABSTB) 조기변재 포괄허가 요청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년간 ‘ARS 제도개선TF’를 운영하며 보완 연구를 진행해왔고, ‘회생절차 전 단계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이번 개편안을 만들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달 초 서울회생법원 법관들을 대상으로 연구회를 가졌고, 월말엔 도산법연구회에서 개선 방안을 발표한 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양민호 수석부장판사는 “기업들이 회생신청을 은밀하게 하다보니, 협의 없이 법원에 갑자기 오는 경우 혼란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회생신청 이전의 절차가 대단히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기업이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영업과 병행하며 회생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법원이 현행 제도하에서 협의의 장을 제공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법인회생을 총괄하는 이여진 부장판사는 “실무를 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회생신청’에 대해 화를 내는 채권자나 관계자들이 굉장히 많다”며 “pre-ARS 과정에서 채권자들의 이해를 구하게 되면 설령 협상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나중에 회생절차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ARS 효율적 병행 골든타임 내 구조조정”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을 신청하면 일단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워크아웃 절차가 진행되고, 동시에 법원의 ARS 회생절차에선 워크아웃 중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명령‧허가‧결정 등을 내주며 조력한다. 서울회생법원 황성민 판사는 “워크아웃 절차 진행을 최대한 보장하고 지원하면서, ‘혹시 나중에 회생절차가 필요할 경우’도 동시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워크아웃이 결렬될 경우 그대로 회생 절차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정준영 법원장은 “워크아웃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회생절차로 이행해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며 “본질적으로 채권자-채무자의 협상이 가장 중요하고, 거기서 나온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을 워크아웃‧회생절차 각각의 장점을 취해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