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부터 ‘탕핑(躺平)’이란 용어가 중국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했다.
탕핑은 ‘바닥에 퍼질러 누워버린다’는 뜻이다. ‘평온함을 유지하며 저항하지도 협조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로 퍼져나갔다. 실생활에서는 돈의 노예로 사는 삶, 즉 정규직 직장, 결혼과 육아, 집과 차를 사는 돈이 드는 세속적 삶에서 탈피해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더라도 나만의 안온한 삶을 누리겠다는 가치관이다. 이런 철학을 가리켜 ‘탕핑학(學)’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탕핑을 처음 주장한 글쓴이에겐 ‘탕핑대사(大師)’란 존칭이 붙었다.

'탕핑(?平)'. 바이두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쥐 인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고, 화장실에 가거나 문 앞에 배달된 음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일어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유한다.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저에너지”라 묘사하며, 사회적 교류나 외출을 꺼린다. 하루 23시간까지 침대에서 보낼 수 있다는 게시글들도 보인다.

'쥐 인간(老鼠人)'. 바이두
이 영상을 본 네티즌 댓글 대부분은 이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감탄을 표했고, 일부는 자신도 수년간 이런 삶을 살아왔다며 공감했다. “나는 5년째 쥐 인간으로 살고 있다. 전혀 사회적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댓글도 달렸다.
탕핑에 이어 등장한 쥐 인간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비관주의와 체념을 반영한다.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통한 자포자기 상태다. 기본적인 일상적 필요만 충족하는 생활 방식을 통한 조용한 저항이기도 하다. SNS에선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다. 열심히 해도 변하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들이 달리고 있다.
탕핑이란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시절에 앞서 ‘996’이 등장했다. 당시 중국에서 급속히 뻗어나가던 IT 업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를 해야 하는 방식을 말했다. 여기에 취업난까지 더해지자 좌절한 젊은이들은 값비싼 소비재, 가정 꾸리기, 주택 구매 등을 포기하고 보다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직장 ‘996’ 방식. 바이두
마오의 하방이 홍위병들의 정치적 과열을 잠재우려는 목적이었다면 시진핑의 주장은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침체하는 가운데 내놓은 발언이다. 거시적으론 국제 경제에서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의 위상 변화와 미국의 통상 압력이 침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관세가 100%를 초과하면서, 대외 무역에 의존하던 많은 중소기업이 운영을 중단하고 내수 시장으로 전환해야 했다. 이로 인해 수천 개의 공장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4월 미국의 세 자릿수 관세가 중국 내 최대 2억 명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을 4.5%에서 4%로 내렸다.
미시적으론 지속적인 부동산 위기로 가진 재산을 내 집 마련에 쏟아부은 중산층의 압박감, 음식 배달부터 사교육에 이르기까지 민간 부문에 대한 수년간의 규제와 단속으로 사라진 수만 개의 일자리 등 복합적 원인들도 있다. 음악 과외 강사로 일했던 한 젊은이는 중화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의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열악한 경제와 취업 시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특히 팬데믹 이후 많은 대학 졸업생이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증폭됐다”고 전했다. “젊은이 한 세대 전체가 제한된 기회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희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이난(海南)성 2024 여름 인재 채용설명회' 현장. 신화통신
청년 직장인의 급여도 감소했다는 글도 있다. 선전시 정부에 취업한 한 초급 공무원은 젊은이들의 월급이 현재 약 4000위안에서 5000위안(약 80만원에서 97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이는 선전시 당국이 보고한 평균 월급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선전은 중국 내 다른 많은 도시보다 생활비가 훨씬 높은 지역이다. 지방정부나 공공 부문은 직업 안정성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젊은이들에게 인기 직종이었다.
중국과 비슷하게 한국도 근래 공무원이 인기 직종이었다. 두 나라 젊은이 모두 스마트폰에 몰두한다. 지출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설계가 별로 없다는 점도 그렇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