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1시30분 충남 태안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고(故) 김충현씨(50) 빈소. 백발의 노모가 아들이 영정 사진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조문객의 인사에도 노모는 일어서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만 닦아냈다. 김씨의 동료들이 조문할 때는얼굴을 들지 못했다. 삼형제 중 둘째인 김씨는 꼼꼼한 성격에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동료들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정비건물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충현씨 사망사고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들이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김씨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주변에서 인정하는 사람’ ‘선반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는 숙련된 기술자’로 기억했다. 이들은 “(숨진) 김씨를 기리고 유족을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선 철저한 진상 규명과 회사의 사죄,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후 1시 김씨의 빈소와 5분 남짓 떨어진 한국서부발전㈜ 정문에서는 태안화력 비정규직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김씨의 사망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이번 대선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참석해 김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김용균 죽음 이후에도 지켜지지 않는 약속, 지속한 위험의 외주화와 정비인력 축소가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다”고 밝혔다. 이어 “김용균 노동자가 떠난 뒤 6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또다시 노동자가 홀로 일하다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며 “고인은 2차 하청업체 소속으로 최근 발전소 폐쇄 등의 이유로 심각한 인력 부족 속에서 일해왔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정비건물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충현씨 빈소가 마련된 태안의료원 장례식장. 신진호 기자
권영국 후보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졌는지, 원청(한국서부발전)과 하청(한전KPS)이 경영과 안전 책임자로 조치를 다 했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후보는 “2018년 김용균의 희생으로 우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두 가지 법을 바꿨다”며 “두 법의 공통점은 원청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용균 재단 김미숙 대표는 2018년 아들이 숨졌을 때의 기억으로 트라우마가 있다고 운을 뗀 뒤 “유족의 울음소리가 내 모습 같아 기가 막혔다. 언제까지 사고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것인가”라며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정비건물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충현씨 사망사고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들이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진호 기자
한전KPS 비정규직노조 김영훈 지회장은 “김씨가 작은 작업장 안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고 기억했다. 한전KPS는 김씨가 소속된 회사의 1차 하청업체다. 김 지회장은 “아프게 돌아가셨다. 진작에 정규직이 돼야 했을 분인데 그동안 많이 참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2일 김씨의 소속 회사인 한국파워O&M과 하청업체인 한전KPS,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 관계자 등을 불러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했다. 사고 직후 현장 사무실에서 확보한 작업 일지와 매뉴얼 등을 근거로 숨진 김씨가 정해진 규정에 따라 근무했는지도 확인했다. 김씨가 속한 회사의 현장 소장으로 사고를 신고한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 정비건물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충현씨 사망사고와 관련, 유족과 노동자들이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을 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후 현장 CCTV와 관련 서류를 확보한 만큼 철저한 조사를 거쳐 사고 경위를 명확하게 규명하겠다”며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4일쯤 부검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이번 사고와 관련, “관계 당국은 철저한 진상조사로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백하게 밝히고 위법 사항이 드러나면 책임자까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