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위축에 ‘짓다 멈춘 아파트’ 2년 반 동안 37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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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기자 사진 이현 기자
중견 건설사 도산·폐업이 잇따르는 가운데 아파트 분양보증 사고가 또 발생했다. 2023년 이후 공사가 멈춘 아파트 현장은 37곳에 달한다. 지방 미분양과 건설 경기 침체로 연말까지 사고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강원 강릉 '영무예다음 어반포레'와 경기 양주 '용암 영무예다음 더퍼스트' 현장이 보증사고 처리됐다. HUG에 보증보험을 가입한 시행사가 부도나 법정관리 등으로 분양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HUG는 해당 사업장을 '보증사고 처리'하고 수분양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대신 환급한다.

이는 각각 올들어 2번째·3번째 보증 사고다. 두 단지는 지난 1월 1·2순위 청약 경쟁률이 각각 0.16대 1, 0.09대 1로 미분양이 발생했다. 시행사인 영무토건은 미분양 여파로 지난달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분양·임대 보증사고는 2021~2022년에는 한 건도 없었지만, 건설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한 2023년 이후 급증했다. 지난달까지 2년 5개월간 총 37건, 사고 금액은 2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3일 HUG가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이후 보증 사고가 난 45개 사업장 중 공사가 재개됐거나(분양이행·계속사업) 매각 완료된 곳은 16곳뿐이다. 나머지 29곳은 공사 중단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특히 2023년부터는 이전까지 드물었던 임대아파트 사업장에서도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3건, 2024년 6건 발생했고, 올해 초 멈춘 강원 '춘천 시온 숲속의아침뷰'도 임대보증 사고였다. 보통 사업성이 낮아 분양에 실패한 단지를 ‘울며 겨자 먹기’로 임대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좌초된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30가구 이상 아파트를 분양하거나 임대할 경우 HUG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다. 시행사 부도·회생신청 등으로 공사가 멈추면 HUG는 계약자들에게 계약금·중도금을 환급한 뒤 사업장을 매각해 손실을 회수한다. 사업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볼 경우 대체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건설 경기 침체로 매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HUG는 지난해 6월과 9월 두 차례 매각 설명회를 열었는데, 14년 만에 처음으로 본사 주관으로 열린 매각설명회였다. 다음 달 초에도 '환급사업장 매각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고는 늘고, 사겠다고 나서는 곳도 적다 보니 10개월 만에 설명회를 또 열게 됐다. 

전세사기 여파로 HUG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3년간 누적 순손실은 6조7883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분양보증 사고까지 급증하면서 HUG의 재무건전성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공사 중단 상태로 20년 넘게 방치 중인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 용인시

공사 중단 상태로 20년 넘게 방치 중인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 용인시

매각에 실패한 사업장은 공사 중단 상태로 방치된다. 짓다 만 아파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성이 떨어져 매각이 더 어려워진다. 2020년 공사가 중단된 전북 군산 '수페리체 임대아파트(492세대)'와 제주 '레이크샤이어공동주택(38세대)'는 아직도 공매가 진행 중이다. 

20년 넘게 방치돼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한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인천 효성동 '다소미 아파트'는 2003년 착했지만 분양 사기와 시공사 부도 등으로 사업이 중단돼 20년 넘게 방치 중이다. 충북 제천 '광진아파트'는 2005년 공사 중단 이후 20년째 방치되다, 지난 4월에야 제천시가 소유권을 확보하고 철거 절차에 들어갔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건설원가는 계속 오르는 반면, 인구 감소로 수요는 감소하고 개발 이익이 점점 줄어 미분양이나 공사 중단에 이르는 현장이 늘고 있다"며 "장기간 방치된 공사 현장은 외관 문제를 넘어 범죄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한 경우 지자체가 강제 철거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