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 선수들이 '닭백숙'이라 조롱받는 이유는

2026 북중미 축구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사실상 일단락됐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10일 쿠웨이트를 4-0으로 이기며 6승 4무로 현재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무패 진출을 기록했다. 이로써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화통신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화통신

중국은 5일 인도네시아에 0-1로 패하며 또다시 월드컵 진출이 좌절됐다. 한국-쿠웨이트전이 열리던 날 바레인을 1-0으로 이겼지만 씁쓸히 월드컵 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류젠훙이라는 중국 축구 전문가는 “2030년 월드컵 본선에서 보다 높은 포트로 배정받기 위해선 중요한 경기였다”고 승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내년에 열리는 북중미 월드컵 본선 티켓은 32장에서 48장으로 늘어났다. 이중 아시아에 배정된 몫은 4.5장에서 8.5장이 됐다. 다들 중국을 기어코 월드컵에 참가시키겠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14억 중국인의 축구 열기와 엄청난 중국의 축구 시장에 FIFA가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훨씬 넓어진 관문도 결국 뚫지 못했다. 중국 매체는 “중국이 바레인에 1-0으로 승리할 때 일본은 인도네시아에 6-0, 한국은 쿠웨이트에 4-0 대승을 거두는 등 한일은 레벨이 다른 경기를 선보였다”고 평했다.

중국인들은 분노를 넘어 좌절감에 자조를 일삼고 있다. SNS에선 “축구는 신이 중국에 내린 형벌” “월드컵에 진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월드컵 개최뿐” “축구에 투자할 돈으로 항공모함 10척 더 만들라” “우리는 벌써 2030 월드컵 준비에 들어가는데 한국은 뭐 하고 있나” 같은 반응들이 넘쳐났다. 판매 15분 만에 5만5000장이 매진된 아시아 예선 최종 바레인전 티켓은 중국이 인도네시아전에서 탈락하자 중고 사이트에 반값 매물로 쏟아졌다. 중국 축구팬들은 희멀겋고 근육질이 아닌 몸을 가진 중국 대표팀 선수들을 ‘닭백숙’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중국 유소년 축구선수들. 신화통신

중국 유소년 축구선수들. 신화통신

중국은 역대 최고 지도자들이 축구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의지로도 축구 실력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마오쩌둥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축구와 농구, 수영에만 선수단을 파견했다. 1954년엔 당대 최고 축구팀을 보유한 헝가리에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을 2년간 유학시켰다. 문화혁명이란 환란 중이던 1971년에도 마오는 올림픽을 제패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그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죽기 전에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땐 중계권도 없이 불법으로 경기를 방영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때도 직접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유일했다. 개최국 한국과 일본이 지역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다른 조에 엮이는 천운에 힘입었다. 그렇게 진출한 본선에선 코스타리카(0-2), 브라질(0-4), 터키(0-3)에 무득점 완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역사를 겪어오며 시진핑은 대대적인 축구 육성 정책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축구개혁 종합방안 50개조’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아시아 1류 수준의 프로축구 ▶남자대표팀 아시아 선두 실력 확보 ▶장기적으로 월드컵 개최다. 이를 위해 전국에 2만 개 축구 전문학교 설립 계획도 내놨다. 이른바 ‘2000명 리오넬 메시 만들기’다. 하지만 윗선의 지시가 그대로 전달되긴 힘든 법이다. 곳곳에서 전시행정이 드러났다. ‘축구 체조’가 등장하고 탁구, 농구 같은 전통적 강세 종목들이 축구 육성 때문에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20년 3월 29일 중국 유소년 축구선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내외. 신화통신

지난 2020년 3월 29일 중국 유소년 축구선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내외. 신화통신

축구는 빈자(貧者)의 스포츠다. 중남미의 뒷골목, 아프리카의 모래밭에서 맨발로 허름한 축구공을 다투던 아이들이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됐다. 반면 중국에서 축구는 부자의 스포츠다. 소황제로 불리는 부잣집 외동아들이 고가의 축구 아카데미에서 공을 찬다. 당연히 ‘헝그리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프로리그인 슈퍼리그의 연봉 톱10 선수들 대부분은 손흥민보다 많은 돈을 받는다. 디디에 드록바, 카를로스 테베스, 니콜라스 아넬카 같은 톱스타들이 중국 리그에서 뛰었다.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르첼로 리피, 루이스 필리페 스콜라리와 잉글랜드 대표팀을 지휘한 스벤 예란 에릭손 같은 명장들이 중국 대표팀과 클럽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 축구팬들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를 보유한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설상가상 중국의 소위 명문 구단들은 부동산 경기의 붕괴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중국은 탁구와 배드민턴 같은 개인 종목에선 세계 정상 수준이다. 하지만 단체 종목, 특히 경기를 뛰는 선수 수가 가장 많은 축구에선 약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팀워크보다 개인주의가 앞서는 중국인들의 문화가 반영되는 게 아닌가 싶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