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해 수백번 드나든 中군함, 미군기지 감시할 레이더 달았다

서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회색지대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수년 사이 중국이 감시 장비를 탑재한 군함을 군산 주한미군 공군기지에서 불과 100여㎞ 떨어진 해역까지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산의 주한미군은 대만 유사시 우선 투입될 핵심 전력으로 꼽히는 만큼 중국이 한국을 겨냥한 정찰 활동은 물론 주한미군 기지에 대한 정보 수집까지 시도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월 실시된 중국 함대의 대테러 및 해적 퇴치 훈련 관련 자료사진.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 1월 실시된 중국 함대의 대테러 및 해적 퇴치 훈련 관련 자료사진. 신화통신=연합뉴스

"어청도 외곽 40㎞까지 진입"  

17일 합동참모본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해군 함정은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서해의 한국 관할 해역에 약 170회 진입하면서 어청도 서방 영해 외곽 약 60㎞까지 근접했다. 

어청도는 군산에 있는 주한미군 제7공군 예하 8전투비행단 기지와 직선 거리로 60㎞정도 떨어져 있다. 영해는 약 22㎞(국제법상 12해리)이기 때문에 중국 군함이 군산 미군 기지로부터 142㎞ 지점까지 다가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합참은 군사적 이유로 한국 관할 해역의 정확한 경계선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이는 경계 획정이 되지 않은 한·중 잠정조치수역(PMZ)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중국은 지난 2022년에는 약 240회 한국 관할 해역에 들어왔는데, 당시에는 어청도 서방 영해 외곽 약 40㎞까지 근접했다. 2018년(약 230회 진입)과 2019년(약 290회 진입)에도 어청도 서남방과 서방 영해 외곽 약 50㎞까지 이르렀다. 중국이 최근 수년간 수시로 주한미군 군산 기지 근방 100여㎞ 해역을 오간 셈이다.


특히 한국 관할 해역에 진입한 중국 군함 대부분은 해상 감시 레이더 등을 장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 군함이 해상감시 레이더 등 감시장비를 보유한 점을 고려할 때 일정 수준의 정찰 또는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간 중국 군함이 감시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은 제기돼 왔으나, 군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더해 군이 이를 정찰 목적으로 보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된 것이다.

실제 중국 군함의 탐지 거리는 통상 수백㎞에 이른다. 어청도 인근까지 오면 군산 기지 전역을 감시망에 둘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전투기 출격 등 각종 자산 운용부터 전파 및 전자정보 신호 발신 등 미군의 다양한 동향을 감지하는 게 가능하다. 대만 해협 유사시 증원 전력 차단을 염두에 둔 행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흑산도·홍도·서격렬비도 앞바다도 활보 

중국 군함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약 220~290차례에 걸쳐 서해의 한국 관할 해역에 진입했다. 2023년에는 빈도가 약 360회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약 330회였다. 

중국 군함은 어청도 외에도 흑산도, 홍도, 서격렬비도의 영해 외곽 50~90㎞를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격렬비도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인근 서해 끝단에 자리잡고 있어 ‘서해의 독도’로 불리며, 군사적·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해역이기도 하다.

2014년에는 중국인 투자자가 서격렬비도 매입을 시도해 논란이 됐다. 외국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며 무산됐지만, 서격렬비도가 중국의 내해화 전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후로 더 커졌다.

지난해 4월 중국 제46함대가 대테러 및 해적 퇴치 훈련을 하는 모습 관련 자료사진.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해 4월 중국 제46함대가 대테러 및 해적 퇴치 훈련을 하는 모습 관련 자료사진. 신화통신=연합뉴스

 
국방부 관계자는 중국 군함의 한국 관할 해역 진입과 관련해 "타국의 군사 활동 목적에 대해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제한되지만,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 등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군 역시 경각심을 갖고 서해 상 중국 군함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는 뜻이다.

합참은 "군은 국제법을 준수하며 PMZ 내 중국 군함 활동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대응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일관되고 적극적인 관할권을 행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영향권 확장 위한 장기 전략 일환"

 
중국의 이런 행태가 우려를 사는 건 서해 뿐 아니라 다른 여러 해역에서도 중국이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해군력을 투사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만해협 등에도 군함을 파견했다. 주변국에 대한 압박은 물론 장기적으로 영유권 주장 등 전략적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해상에서 시험 운행 중인 중국 항공모함 푸젠함. AP=연합뉴스

해상에서 시험 운행 중인 중국 항공모함 푸젠함.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서해상 군사 활동 역시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중국해처럼 서해도 자국 영향권으로 만들려는 장기적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며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증강한 해군력을 실제로 투사해보는 훈련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평택·군산 등 서해 인근 주한미군 기지를 겨냥한 접근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한·중 간 해양 신뢰 구축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대식 의원은 “중국 해군 함정의 반복적인 우리 관할 해역 진입은 단순한 해상 활동이 아니며, 우리 해역을 내해화하려는 회색지대 전략이자 실질적인 침투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강력한 외교·군사적 대응체계를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양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서해에서 경계를 흔들어보려는 중국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PMZ 내 근해에 양식시설로 주장하는 구조물 3기를 설치했고, 최근에는 최신예 항공모함 푸젠함을 동원해 PMZ 내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