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그 호랑이 맞아?…'8년 감금' 호광이 새 삶 시작한 곳

남부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28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우치 공원 동물원(우치 동물원)에서 벵갈 호랑이 '호광이'가 야외 풀에 몸을 담근 채 개구호흡을 하며 폭염과 싸우고 있다. 호광이는 경기도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지내며 정형행동을 보이다 올해 초 구조돼 우치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사진 정은혜 기자

남부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28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우치 공원 동물원(우치 동물원)에서 벵갈 호랑이 '호광이'가 야외 풀에 몸을 담근 채 개구호흡을 하며 폭염과 싸우고 있다. 호광이는 경기도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지내며 정형행동을 보이다 올해 초 구조돼 우치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사진 정은혜 기자

 

"더워서 '개구호흡'(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채 호흡) 하는 건데요. 실내로 들어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33도 넘는 폭염이 덮친 28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북구의 우치공원 동물원(이하 우치 동물원). 맹수 구역에 진입하니 한 벵갈 호랑이가 더위 때문인지 물 속에 몸을 담고 혀를 내민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여느 호랑이·사자처럼 시원한 실내 방사장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야외에 머물고 있는 이 호랑이는 올해 4월 경기도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구조된 '호광이'다. 호광이는 일생 대부분의 시간인 8년여간 햇빛 없는 실내에 갇혀 지냈다. 심한 스트레스로 '정형행동(목적 없는 행동을 반복)'을 보이던 호광이는 우치 동물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지난 5월 방사장으로 옮겨졌다.

이날 그늘과 풀장을 오가던 호광이는 밀림처럼 꾸며진 계곡형 풀장으로 이동한 뒤엔 '어흥'하고 큰 소리로 포효하기도 했다. 정하진 우치동물원 진료팀장은 "처음 야외 방사장으로 나왔을 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일 냄새를 맡으며 공간을 탐색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실내에 먹이가 있는데도 3일간 굶은 채 야외에 머물 정도로 바깥을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소재 우치 동물원에서 구조 호랑이 호광이가 실외 방사장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폭염과 싸우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소재 우치 동물원에서 구조 호랑이 호광이가 실외 방사장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폭염과 싸우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사육곰 등 구조 동물 보호…사연 공개해 시민 호응↑

30일 환경부가 지정하는 '거점 동물원'으로 거듭나는 광주 시립 우치 동물원에는 호광이처럼 구조된 다양한 동물들이 머물고 있었다. 순천·여주·보성의 농가에서 길러졌던 반달가슴곰, 애완 뱀으로 밀반입됐다가 버려진 붉은꼬리보아뱀과 알거스도마뱀, 동물 카페 폐업으로 갈 곳 없어진 타조, 어미 잃고 홀로 남았다 구조된 새끼 수달이 그들이다.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끼임 사고로 턱관절 수술을 받은 볼파이톤(아프리카산 공비단뱀)이 기자를 향해 턱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끼임 사고로 턱관절 수술을 받은 볼파이톤(아프리카산 공비단뱀)이 기자를 향해 턱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동물원 곳곳엔 치료 중인 동물들의 사연과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띄었다. 부부싸움 중 왼쪽 다리를 다쳐 절단 수술을 받은 테구도마뱀(남미산 대형 도마뱀) '테희'의 회복실 근처에는 "테희야 힘내", "테민이랑 살지 말고 행복해" 등의 응원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우치 동물원에서 40년 가까이 살다 올 초 세상을 떠난 하마 '히뽀'의 실내 방사장 유리창에는 추모의 글이 가득했다. 동물원 상주 수의사인 강주원 씨는 "예전에는 아프거나 죽은 동물은 동물원이 숨기던 모습이었는데, 치료 과정과 스토리를 공개했더니 시민들이 더 큰 응원으로 화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올해 3월 세상을 떠난 우치동물원 하마 '히뽀'의 실내 방사장 유리 벽면에 시민들의 추모 글이 가득 적혔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올해 3월 세상을 떠난 우치동물원 하마 '히뽀'의 실내 방사장 유리 벽면에 시민들의 추모 글이 가득 적혔다. 사진 정은혜 기자

  
최근 몇 년 새 우치 동물원은 구조 동물을 치료하거나 보호하는 일이 잦아졌다. 2년 전 '동물원법'이 개정되면서 환경부가 허가하지 않은 동물원에서 야생동물 전시가 금지됐다. 그러자 허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설 동물원, 관련 카페 등이 야생 동물과 파충류를 몰래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개인이 해외에서 밀반입했다가 유기하는 사례도 많다.

치료 의지 강한 수의사들, 공부하며 진료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동물원 앵무새가 인공 부리 이식 수술을 받고 동물원 병원 회복실에 머물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동물원 앵무새가 인공 부리 이식 수술을 받고 동물원 병원 회복실에 머물고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병원 벽면에 앵무새 인공 부리 수술 과정을 소개한 저널 기고문이 공개돼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 공원 동물원. 병원 벽면에 앵무새 인공 부리 수술 과정을 소개한 저널 기고문이 공개돼 있다. 사진 정은혜 기자

동물원 상주 수의사들의 의지도 강한 편이다. 시 당국을 설득해 수술실과 진료실 장비를 확충하고, 외부 기관의 치료 요청이 오면  갈 곳 없는 동물들을 하나씩 맡아왔다. 올 3월에는 제주도 소재 동물원 '화조원'의 알락꼬리여우원숭이(국제 멸종위기종)의 팔 분쇄골절 수술에 성공하는 등 수술 성공 사례도 쌓이고 있다. 우치동물원은 천연기념물 공식 진료소로 지정됐다. 정 팀장은 "모든 동물의 수술이 처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속 새로 공부하면서 수술과 치료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원법에 따르면 거점동물원은 동물병원, 교육시설, 연구·방사 훈련 시설 및 적정한 전문 인력을 갖춰야 한다. 우치동물원은 환경부가 청주동물원(중부권·지난해 지정)에 이어 지정한 두번째 거점동물원이다. 

환경부 측은 "우치동물원이 우수한 진료 인력을 보유했고 야생동물 보전, 관리 경험이 많아 호남권 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향후 수도권과 영남권 거점 동물원도 지정할 계획이다.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소재 우치동물원 병원의 수술실. 정하진 진료팀장과 강주원 수의사가 특수 제작한 수술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를 늘려 제작했다. 사진 정은혜 기자

28일 광주광역시 북구 소재 우치동물원 병원의 수술실. 정하진 진료팀장과 강주원 수의사가 특수 제작한 수술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를 늘려 제작했다. 사진 정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