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통과 임박…경영계 "무방비 상태, 소송 남발 우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경제6단체 부회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경제6단체 부회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재검토해달라는 경영계 호소에도 ‘선(先)시행·후(後)보완’ 원칙을 재확인했다. 일단 통과시킨 이후, 부작용은 추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그간 상법 개정에 반대해온 국민의힘도 전향적인 검토 입장을 밝히면서 경영계는 배임죄 소송 남발 등 부작용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0일 국회에서 경제6단체 상근부회장단과 가진 ‘상법 개정 간담회’에서 “기존 제도가 바뀌는 데 대한 경영상 부담을 기업인들이 제기하고 있지만 다소 부담이 있대도 상법이 개정되면 주식시장이 다시 한번 뛰어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상법 개정 이후) 우려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얼마든지 제도를 보완하고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외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집중투표제 활성화, 그리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 등도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상법 개정안을 한 차례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불발됐다.

경영계는 충실 의무 대상이 확대되면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늘어나고 해외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이날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의 법체계상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주주가 충실 의무 대상에 포함될 경우) 이사들은 다양한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므로 경영상의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며 “특히 소액주주들의 요구가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이나 다른 주주들의 이익과 상충할 때 이사들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영계는 배임죄 부담 완화,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등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나친 소송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남용 우려가 큰 일부 배임죄 폐지, 사법적 판결을 통해 정착돼 온 경영 판단의 원칙을 주주 충실의무 조항과 함께 상법에 함께 반영하는 문제, 경영권 보장 장치에 대한 고민 등이 고려돼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우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보완 입법은 추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오는 7월 3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이날 간담회를 마치고 “기업들의 입장에서 처벌이 너무 과하다는 비판을 다양하게 듣고, 하반기에 특이사항을 논의하면서 정기국회 과정에서 처리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를 마지막 기회로 여긴 경영계는 실망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간담회 참석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안 내용을) 재검토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민주당에선 일단 시행을 하면서 부작용이 있으면 수정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며 “하지만 언제 어떻게 보완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마저 “상법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하자, 경영계엔 당혹감이 번지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간 기업에 대한 과잉 규제로 작용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했지만, 경영계에선 사실상 무방비로 상법이 개정되는 상황에 처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상사법학회장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이 상법 개정을 이대로 밀어붙이면 경영계에선 대응할 방법이 사실 없다”며 “배임죄 완화 등 경영계에 약속한 보완 입법을 최대한 빨리 진행해주는 것만이 답”이라고 지적했다.